복음서의 꼼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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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일먼저 쓰인 마가복음이 마태복음 뒤에 놓였을까?
교회가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에 퍼져감에 따라, 다시 이교 세계에도 이해될 만한 예수 상을 그릴 필요가 생겼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바울의 시점을 다시 짜깁기하면서 쓰인 것이 누가서이다.
누가서에는 헬레니즘 세계에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예수 상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죄 사함이라는 개념을 강하게 내세워, 회개라는 모티브가 전면에 나오고 있다.
마태서와 누가서는 모두 마가서를 바탕으로 했는데, 각각의 저자들은 공통의 예수 어록집을 사용했다.
이 어록집은 일반에게는 Q문서로 알려졌다. (자료를 의미하는 독일어 Quelle의 이니셜)
이와 같이 마태서와 누가서는 마가서와 Q문서라는 세 개의 자료를 인용해서 쓰였다고 사료되기 때문에
2문서설이라 한다.
게다가 마태서와 누가서는 각각 독자적인 자료(마태 특수 자료 및 누가 특수 자료로 불린다)도 인용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들이 더해질 경우에는 4문서설이라 한다.
이와 같이 마태서와 누가서가 마가서를 바탕으로 해서 쓰였으므로, 이들 3개의 복음서는
얼핏 보면 같은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이들 3복음서는 공관복음서라고 한다.
공관복음서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해는 최근에 와서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공관복음서라고 해도
주의해서 읽으면, 여러 곳에서 중대한 모순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한편 현재의 신약에는 또 하나 요한서가 들어있다. 이것은 90~100년대에 쓰였다.
내용적으로는 이제까지의 3복음서와는 많이 달라서, 예수의 말을 인간의 육신을 가진 신의 말씀으로 그리고 있다.
이 복음서 속의 예수는 길고 어려운 [신학적 강의]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고, 상당히 신비적인 반향도 갖고 있다.
최초의 기독교회는 실로 다양한 유파가 있었는데, 아직 뒤의 기독교적 정통파 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당한 유대교적 율법준수의 자세를 가지고 있던 예루살렘교회 같은 그룹도 있었고,
그노시스주의라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그룹도 있었다.
다시 2세기가 되면 마르키온파라고 부르는 유파나 몬타노스파라고 부르는 그룹도 생겨났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원 후 66년에 시작되어 70년까지 계속된 제 1차 유대전쟁의 결과 소멸해버렸는데,
그 외의 것은 후에 모두 이단으로써 단죄되었다.
그들 이단은 여러 유파 속에서 각각 자신들이야말로 정직한 복음을 대표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고,
그런 자신들의 신앙이해를 순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특히 2세기 중엽에 번성했던 마르키온 파는 바울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바울보다 바울적이었다.
그 때문에 지도자 마르키온은 순수한 바울적 이해를 철저히 하려고, 우선 히브리경전을 이미 버리고
순수하게 바울의 서간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제일 바울적이라고 생각되는 누가서만을 선택해서
정전으로 하려는 운동을 일으켰다.
정전은 그리스어의 [캐논]에 유래하는 개념으로 그것은 기준이나 규범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유파에 대항해서 후에 기독교 정통파라고 불리게 된 그룹 사람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스스로의 정전을 편집하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많은 사람들의 찬동을 얻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4세기 말까지 이 결정은 지연되었다.
4세기 초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대제에 의해서 제국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써
그리스도교가 제일 현실에 맞는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쓰인 마가서가 여러 가지 비판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어서, 후의 기독교 정통파에게는 맞지 않았지만,
교회발전의 각각의 단계에서 선교 대상이나 목적에 맞춘다는 이유로 마태서나 누가서가 마가서를
바탕으로 해서 쓰인 것이다.
그 뒤 요한서도 쓰였지만 정전을 결집할 때에 기독교 정통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마가서를,
쓰인 순서에 따라 맨 앞에 두는 것을 피해 정통적인 시점을 갖는 마태서를 맨 앞에 둔 다음,
그 다음에 마가서를 넣고 마지막에 누가서를 둠으로써, 소위 샌드위치 규제를 해서 마가적 시점이
잘 보이지 않게 했다.
정전 결집을 한 정통교회라는 조직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을까?
상당히 능숙한 꼼수였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뒤에 ‘마가서 강해(분석)’로 내놓을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도 신약을 읽게 되면, 우선 마태서부터 읽기 시작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마태적인 사고의 틀에 빠져 버린다.
그 틀을 전제로 해서 마가서를 읽으면, 대개의 이야기 줄거리는 원래 마가서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똑같은 얘기라고 생각돼서 마가서의 독특한 비판적 시점 등은 보이지 않게 돼버린다.
게다가 마가서는 16장 밖에 없고, 한번 보면 소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 문제 제기를
읽어낼 수가 없게 돼버린다.
그래서 그 뒤에 누가서를 읽어도, 약간의 누가적인 새로운 이야기(탕자 이야기나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 등)는
알게 되더라도, 마가서와의 본질적인 차이점 등은 알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즉 그냥 공관복음서로써 읽게 되는 것이다.
마가서가 가장 먼저 쓰였으면서도 왜 신약에서 두 번째로 배치되었는지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종교(기독교)는 믿음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계획적으로 금지된 유일한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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