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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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씨앗의 비유<막 4;26~29>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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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의 비유<막 4;30~32>
30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의 독특한 가르침에 무엇이 있나? 라는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이라고 답하는데,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예수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유대 학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 등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고 있었고, 그들은 소위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처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라고 번역된 말은 본래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이며, 그 때문에
어떠한 율법을 어떤 식으로 지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유대교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후일 그리스도교회도 이런 관리자적 발상을 계승했다.
마태서 16장에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워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는 유명한 전승이 보인다.
거기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또 다른 곳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무슨 권위이고, 무슨 특권일까? 마가는 제자들이 교회 지도자가 되고, 자기들을 사도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특권적 권위를
갖는 자로 하는 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구제시설로써의 교회를 관리하는 자라는 발상에 가까워진다.
물론 교회가 유일의 구제시설이라는 관념이 교의로써 정착되는 것은 훨씬 후의 일이지만, 그런 발상의 씨앗은 이미
초대 교회 속에서 볼 수 있었다. 마가는 그런 제자들의 특권적 이해를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이 자라는 씨앗의 비유를 읽으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된다.
이 비유의 주제는 단적으로 스스로 열매를 맺게 하는 대지의 힘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과연 인간은 씨를 뿌린다고 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필요하다. 그러나 요점은 인간이 씨를 뿌린다는
행위에 없는 것은 명백하다. 27절은 말한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지배는 결국 신의 지배이다. 인간은 대지를 신뢰하고 씨를 뿌리면 된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때가 오면, 사람은 서둘러 낫을 대면 된다. 이 경우에는 낫을 댄다는 인간의 행위도, 대지가 설정하는 때에
따르는 행위라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가 낫을 댄다는 행위를 서두르는 것도 대지가 규정하는 때에 무조건, 그리고
즉각적 호응이라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신을 돕는다는 관점은 없으며, 인간은 무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허락됐다는 것일 뿐이다.
마태서에 이 비유가 무슨 이유에선지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로 바뀌어 버렸다. <13;24~30>
즉 그것은 정통과 이단이라는 사상으로 변질돼 버렸다.
밑바탕이 된 마가서의 비유에서는 본래 그런 것을 강조한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이미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설명한 내용이지만, 이 씨를 말씀(로고스)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예수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악령이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우리가 가서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지배를 성실히 신뢰하고, 예수가 했던 행위를 겸허히 행할 때(씨를 뿌릴 때), 하나님의 지배는 저절로 풍부한
과일을 맺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 풍부한 열매를 맛보는 것(낫을 대는 것)을 허락받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마가가 의도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가 제자들에게는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고 하는 전승을 전하고 있다. <4;34>
그렇지만 그것은 마가가 그 전승에 의해서 제자들의 특권이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마가가 <4;13>을 삽입함으로써, 명확해 진다. 거기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이것은 분명히 제자비판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제자들에의 비판을 마가서에서는 행간마다 볼 수 있다.
이 구절에 이어지는 광풍을 잠잠하게 하는 대목에서 낭패한 제자들이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고 한심한 말을 하는 제자들에 대해 예수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4;40>
현대인의 성경에는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로 되어 있는데, 문자대로 하면 너희들은 어찌하여 피스티스(믿음)가
없느냐이다.
이 피스티스라는 말은 신앙이라고도 번역하지만, 오히려 진실, 진심, 신뢰로 번역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 예수가 바다 위를 걷는 대목에서도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6;51~52> 라고 말하고 있다. 또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말할 때도,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7;18>라고 꾸짖고 있다. 다시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에 대한 부분에서도 얼간이 같이
수군거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고
심하게 꾸짖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다짐하듯이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고 절규하고 있다.<8;17~18,21>
또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간언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는 그를 꾸짖으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8;33>고
하고 있고,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했을 때에도, 제자의 무능을 보고, 예수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라고 한탄한다. 야곱과 요한이 당치도 않은 부탁을 예수에게 했을 때에도,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고 말한다.
그 외에 예수가 제자들의 몰이해를 노골적으로 꾸짖고 있지는 않지만, 제자들이 엉뚱한 질문이나 행동을 하기 때문에,
예수가 한탄하거나 화내는 것 같은 부분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에게 데리고 왔을 때도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꾸짖었지만, 그에 대해서 예수는 노해서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10;14>
이것들은 제자들이 너무 많은 것에서 예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근본적인 부분에서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마가의 주장인 것이다.
마가는 이 같은 제자 비판을 전개함에 따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제자들의 예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예루살렘 교회 등에서 생기기 시작한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론 적 해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마가의 시점이 2000년 전의 사건으로써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타당하고
신선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회에서는 항상 성서를 믿는다 라든가, 성서적이라든가 하고 말하지만,
같은 성서라도 이러한 마가적 시점이, 전통적 예수 이해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목록

사람답게님의 댓글
예수가 말하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상당히 추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누가 17
21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태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런 것들로 봐서, 천국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점점 물리적 형태를 가지는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바이블의 마지막이라는 "계시록"을 보면, 천국이라는 것의 크기까지 나오게 되지요.
낚시꾼이 잡은 물고기는 계속 자란다고 하던가요..
그 표현에 맞는게 바이블이요, 개독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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