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다윗 예전에 너한테 했던 말인데 다시 올린다(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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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조다윗아 니는 지금 성경 무오설, 성경은 절대로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고 단지 오해가 되는 난해한 구절들이 좀 잇을뿐이지 다 맞는말들뿐이며 오타나 오류가 없다 라고 얘기하지?
그러면서 인터파크라는 서점 사이트에서 시르피님 말대로 검색해보니까 출처나 저자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안나와잇을 정도로 이름없고 세상에 두각도 드러내지 못하는 어디 어줍잖은? 신학자들이 쓴 책이란답시고 "성경 난해구절에 대한 신학자들의 책" 이런것들을 소개하는데...
나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 소개해줄게. 니가 혹여 들어봣을런지 모르겟지만 "바트 어만"이라는 성서비평연구자중의 대표격인 사람이 쓴 "성경 왜곡의 역사" 라는 책이 잇어
일단 원글 출처를 알려줄게
http://book.interpark.com/product/SecCompare.do?_method=listSec&prdNo=204804073
여기거든? 아 더 자세한 주소도 알려줄게 여기 클릭하면 책 내용도 간단히 소개되어 잇고 그 책을 본 인터넷 여러 대중, 독자들의 후기 감상평에 대해 쓰고 책에 대해 평가한것도 잇거든?
물론 니랑 같은 종교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평가한 감상평도 잇고 기독교인 아닌 안티들이나 일반 대중들이 감상평 남긴것도 잇지.
바로 여기다.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dispNo=&sc.prdNo=204804073
자 그럼 니 말대로 성경에는 "오류" "모순"이라고 하는게 전혀 없으며 단지 좀 난해한 구절일뿐 틀린 말은 없다는것이 사실인지 한번 보도록 하자
우선 니가 저 인터넷서점 홈피에 들어가서 보면 나와잇겟지만 니가 혹여 클릭을 귀찮아하거나 할거같을수도 잇어서 내가 친절하게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라는 저서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성경에 대한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는지를 함 소개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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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이 되었나?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이 되었나?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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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바트 어만에 대해서 간단하게 니한테 설명해주자면 이사람은 성경 비평 연구가야 물론 성경 비평 연구자라고 하니까 니같이 단순무식한 사람은 "어? 그러면 바트어만 쟤는 기독교 안티놈이네?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놈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겟는데 말야
물론 현재 저 바트어만이란 사람이 내가 들어보니까 그래도 한때는 기독교에서도 보수주의자엿다가 나중에 "불가지론자" (무신론과 유신론 둘다 생각하는 사람) 으로 돌아선 과거 한때 독실한 기독교인 이라고 하더만...
(뭐 그렇다고 이사람이 지금 기독교 안티이고 기독교를 증오,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건 본인도 말하고 잇다)
이 바트어만이란 자가 현재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왜곡문제를 가지고 성서를 비평하는 책을 쓰고 연구햇다고 해서 본인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니며 자기말에 의하면 본인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앙적 대상으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잇거든?
그리고 이 책과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면 니도 알겟지만 이 사람이 성경 비평 연구자로써 성경과 우리 기독교인들이 흔히 아는 신성시되고 있는 예수라고 하는 인물(니들은 주님이라고 하지)에 대한 모순과 왜곡되고 부풀려진 점을 비판한다고 해서 이 사람이 기독교와 성경을 가지고 기독교랑 성경은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라고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수 잇을거다
그니까 이 바트 어만이란 사람의 사상과 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뭐냐면 기독교나 성경 물론 그 나름대로 안티들에게 공격받든 욕을 먹든 하나의 종교이고 누군가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임은 알고 잇으나...
흔히 목회자들이 말하는 성경 무오설(성경엔 한치의 오류나 오타가 없다) 라든가 축자영감설(성경은 오직 하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졋다) 라고 우기는것은 자기도 한때 목회자엿고 또 신도엿고 지금도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혐오하고 싫어하는게 아닌 입장에서 보더라도 또 하나하나 성경과 예수 기독교에 대해 연구, 분석해봐도 절대 아니다
성경엔 분명 오류와 모순들이 존재한다는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이미 증거되어 잇다 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바트어만이 말하는게 "성경에 오류와 모순들도 잇으니까 성경은 보지 말자 쓰레기다" 라고 얘기하는건 아니고
그리고 이 책에 독자들의 감상평이 있는데 여기에도 몇몇 중요한 말들이 있어서 한번 가져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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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인터파크라는 서점 사이트에서 시르피님 말대로 검색해보니까 출처나 저자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안나와잇을 정도로 이름없고 세상에 두각도 드러내지 못하는 어디 어줍잖은? 신학자들이 쓴 책이란답시고 "성경 난해구절에 대한 신학자들의 책" 이런것들을 소개하는데...
나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 소개해줄게. 니가 혹여 들어봣을런지 모르겟지만 "바트 어만"이라는 성서비평연구자중의 대표격인 사람이 쓴 "성경 왜곡의 역사" 라는 책이 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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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거든? 아 더 자세한 주소도 알려줄게 여기 클릭하면 책 내용도 간단히 소개되어 잇고 그 책을 본 인터넷 여러 대중, 독자들의 후기 감상평에 대해 쓰고 책에 대해 평가한것도 잇거든?
물론 니랑 같은 종교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평가한 감상평도 잇고 기독교인 아닌 안티들이나 일반 대중들이 감상평 남긴것도 잇지.
바로 여기다.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dispNo=&sc.prdNo=204804073
자 그럼 니 말대로 성경에는 "오류" "모순"이라고 하는게 전혀 없으며 단지 좀 난해한 구절일뿐 틀린 말은 없다는것이 사실인지 한번 보도록 하자
우선 니가 저 인터넷서점 홈피에 들어가서 보면 나와잇겟지만 니가 혹여 클릭을 귀찮아하거나 할거같을수도 잇어서 내가 친절하게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라는 저서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성경에 대한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는지를 함 소개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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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이 되었나?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이 되었나?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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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바트 어만에 대해서 간단하게 니한테 설명해주자면 이사람은 성경 비평 연구가야 물론 성경 비평 연구자라고 하니까 니같이 단순무식한 사람은 "어? 그러면 바트어만 쟤는 기독교 안티놈이네?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놈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겟는데 말야
물론 현재 저 바트어만이란 사람이 내가 들어보니까 그래도 한때는 기독교에서도 보수주의자엿다가 나중에 "불가지론자" (무신론과 유신론 둘다 생각하는 사람) 으로 돌아선 과거 한때 독실한 기독교인 이라고 하더만...
(뭐 그렇다고 이사람이 지금 기독교 안티이고 기독교를 증오,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건 본인도 말하고 잇다)
이 바트어만이란 자가 현재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왜곡문제를 가지고 성서를 비평하는 책을 쓰고 연구햇다고 해서 본인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니며 자기말에 의하면 본인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앙적 대상으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잇거든?
그리고 이 책과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면 니도 알겟지만 이 사람이 성경 비평 연구자로써 성경과 우리 기독교인들이 흔히 아는 신성시되고 있는 예수라고 하는 인물(니들은 주님이라고 하지)에 대한 모순과 왜곡되고 부풀려진 점을 비판한다고 해서 이 사람이 기독교와 성경을 가지고 기독교랑 성경은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라고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수 잇을거다
그니까 이 바트 어만이란 사람의 사상과 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뭐냐면 기독교나 성경 물론 그 나름대로 안티들에게 공격받든 욕을 먹든 하나의 종교이고 누군가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임은 알고 잇으나...
흔히 목회자들이 말하는 성경 무오설(성경엔 한치의 오류나 오타가 없다) 라든가 축자영감설(성경은 오직 하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졋다) 라고 우기는것은 자기도 한때 목회자엿고 또 신도엿고 지금도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혐오하고 싫어하는게 아닌 입장에서 보더라도 또 하나하나 성경과 예수 기독교에 대해 연구, 분석해봐도 절대 아니다
성경엔 분명 오류와 모순들이 존재한다는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이미 증거되어 잇다 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바트어만이 말하는게 "성경에 오류와 모순들도 잇으니까 성경은 보지 말자 쓰레기다" 라고 얘기하는건 아니고
그리고 이 책에 독자들의 감상평이 있는데 여기에도 몇몇 중요한 말들이 있어서 한번 가져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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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성경을 보다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방법으로 성경의 증명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비평학적 접근에 따라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법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이 방법들로 인해 성경 텍스트의 맥락이 해체 되어 본래의 메시지를 잃게 되었다. 특히 성경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그것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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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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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경은 완벽하다고 한다. 신자에게 있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한치의 오류도 있을 수 없으며 성경에 대해 의심을 품는 자는 하느님을 의심하는 자와 같다. 그러나 가끔은 인간이 만든 완벽하다고 정해놓은 이런 틀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성경이 과연 하느님의 영감만으로 쓰여진 책일까.. 의심스러웠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해본 적이 없다. 나는 독실하다고까지야 말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읽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괜히 읽었다가 성경에 오류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간단히 무시되어 왔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 나의 신앙심을 괴롭힐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고, 읽어봐야 이 책의 잘 못된 점도 꼽을 수 있을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는 예수를 부정하고 하느님을 부정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기독교를 공격할 생각도, 신앙을 무의미한 것이라고 증명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단지 그는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만으로 쓰인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성경은, 어느정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약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인 신약은 오류와 모순의 정도가 조금 더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복음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전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에 성경에는 모순과 오류가 존재한다.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고 못박는 것보다는 유연하다는 생각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오류를 만들어냈다. 하느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종용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은 인정할 때 더 자연스럽다. ’절대’라는 부정은 강조하는 딱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느님이 보낸 가르침이란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인간이 해석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란 내 믿음에 의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절대’ 오류가 없다라고 하는 기독교적 고집을 조금은 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틀림없고, 변함없는 분이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하고 기록했다면 성경에 오류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은연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우월의식으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우습게 알아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존재자체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하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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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읽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괜히 읽었다가 성경에 오류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간단히 무시되어 왔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 나의 신앙심을 괴롭힐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고, 읽어봐야 이 책의 잘 못된 점도 꼽을 수 있을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는 예수를 부정하고 하느님을 부정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기독교를 공격할 생각도, 신앙을 무의미한 것이라고 증명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단지 그는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만으로 쓰인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성경은, 어느정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약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인 신약은 오류와 모순의 정도가 조금 더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복음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전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에 성경에는 모순과 오류가 존재한다.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고 못박는 것보다는 유연하다는 생각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오류를 만들어냈다. 하느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종용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은 인정할 때 더 자연스럽다. ’절대’라는 부정은 강조하는 딱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느님이 보낸 가르침이란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인간이 해석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란 내 믿음에 의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절대’ 오류가 없다라고 하는 기독교적 고집을 조금은 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틀림없고, 변함없는 분이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하고 기록했다면 성경에 오류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은연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우월의식으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우습게 알아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존재자체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하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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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 증명, 종교문제는 한도 끝도 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이다. 완전한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 불완전할 수 있는가의 문제, 선과 악, 악마,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본 야경의 한자락을 차지하는 붉은 십자의 무덤들, 이렇게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많은 나라, 세계에서 인간의 고통과 종교로 인한 분란은 끝이 없는가?
저자인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은 수평적 성경읽기를 통해 복음서의 오류와 저자의 진위문제 등을 역사비평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의 오류와 왜곡된 예수, 기독교의 주요 교리의 역사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의 문제로 인해 지금은 불가지론자로 돌아섰다고 한다.(신의 존재나 기독교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가(성서무오류설)? 성경은 하나의 말씀대로 씌여졌는가(축자영감설)
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입론이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 유수의 신학대학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으나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거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가르칠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해주고 있을까?
맹목적이고 구세기복적인 종교관이 유독히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내용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릴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을 수평적 읽기를 통해 동일한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각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고 모순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부활, 메시아, 유다의 죽음, 종말의 도래 시점, 유다의 문제, 삼위일체, 구원의 문제, 유대인과 기독교의 관계 등에서..
더구나 현존하는 복음서의 원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대부분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고, 예수의 사후 50년 이상 경과된 시점에서 구전되어 전해오는 이야기와 이전에 씌여진 복음서를 근간으로 씌여질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그 내용들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경우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저자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경우는 바울의 서한 집 포한 8권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와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하는 역사서에 예수와 관련된 언급이 거의 없고 위서든 성경이든 기독교와 관련된 복음서나 기록을 통해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예수는 종말론자였고 당대의 사도들의 생전에 종말이 올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인데 그 실현 가능성이 멀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인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성경 완독을 꿈꾸었던 시절 품었던 의문점들이 이 책을 통해 다소간 해소되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 자체,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오류가 불러일으킨 왜곡이 아니라 훗날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에 의해서 발생한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 기독교를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널리 이 책을 읽고 오류를 받아들인다면 좀더 인간적인 종교, 인간적인 기독교에 이해의 지평이 넓어져 작금의 분란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의 의문은 남는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와 기독교를 강하게 부정하고, 기독교는 유대인을 그렇게 부정했을까?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 가해자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수백년이상 지속되어온 반감이 홀로코스트를 낳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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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예수는 훗날의 해석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사복음서를 연구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과 불일치를 파헤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도 서로 다르다. 역사비평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가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요한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제기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신학을 전공한 내게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라는 말처럼, 신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교회는 ’성금요일’이라 부르며, 성일로 기념한다. 그러나 사복음서를 연구해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요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폭로(!)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자 함이 아니다. 학문에도 단계가 있고, 배움에도 순서가 있듯이 그러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이해와 지식적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지적하는데, 나는 성경 안에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오류라고 보지는 않는다.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일 기독교가 성경을 짜집기 하며 교리를 만들어내면서 ’역사적 예수’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왜곡하고자 했다면, "왜 성경 안에 존재하는 그러한 모순을 그대로 놓아두었을까?" 신학이 아닌 신앙적인 견지에서 나는 성경에 나타는 모순을 영적인 신비, 또는 하나님의 수수께끼라고 보고 싶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주님의 가르침은 오직 거듭난 제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을 가능성을 컴퓨터로 분석했더니 그 가능성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분명 <파우스트>의 저자는 괴테가 맞지만, < 파우스트>에 녹아 있는 사상과 철학과 묘사와 표현은 오로지 괴테 자신에게서 나온 그 무엇이 아니라, 괴테가 받은 ’영향’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의 문서로만 접근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로만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예수 왜곡의 역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역사비평, 즉 과학적 비평의 결과물이다. 이 책을 특별히 신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성경 안에 나타나는 모순과 교회의 전통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도전과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학문(신학)의 즐거움이 믿음의 토대를 다지고, 그 뿌리를 더 든든히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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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은 수평적 성경읽기를 통해 복음서의 오류와 저자의 진위문제 등을 역사비평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의 오류와 왜곡된 예수, 기독교의 주요 교리의 역사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의 문제로 인해 지금은 불가지론자로 돌아섰다고 한다.(신의 존재나 기독교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가(성서무오류설)? 성경은 하나의 말씀대로 씌여졌는가(축자영감설)
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입론이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 유수의 신학대학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으나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거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가르칠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해주고 있을까?
맹목적이고 구세기복적인 종교관이 유독히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내용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릴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을 수평적 읽기를 통해 동일한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각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고 모순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부활, 메시아, 유다의 죽음, 종말의 도래 시점, 유다의 문제, 삼위일체, 구원의 문제, 유대인과 기독교의 관계 등에서..
더구나 현존하는 복음서의 원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대부분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고, 예수의 사후 50년 이상 경과된 시점에서 구전되어 전해오는 이야기와 이전에 씌여진 복음서를 근간으로 씌여질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그 내용들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경우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저자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경우는 바울의 서한 집 포한 8권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와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하는 역사서에 예수와 관련된 언급이 거의 없고 위서든 성경이든 기독교와 관련된 복음서나 기록을 통해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예수는 종말론자였고 당대의 사도들의 생전에 종말이 올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인데 그 실현 가능성이 멀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인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성경 완독을 꿈꾸었던 시절 품었던 의문점들이 이 책을 통해 다소간 해소되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 자체,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오류가 불러일으킨 왜곡이 아니라 훗날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에 의해서 발생한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 기독교를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널리 이 책을 읽고 오류를 받아들인다면 좀더 인간적인 종교, 인간적인 기독교에 이해의 지평이 넓어져 작금의 분란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의 의문은 남는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와 기독교를 강하게 부정하고, 기독교는 유대인을 그렇게 부정했을까?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 가해자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수백년이상 지속되어온 반감이 홀로코스트를 낳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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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예수는 훗날의 해석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사복음서를 연구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과 불일치를 파헤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도 서로 다르다. 역사비평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가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요한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제기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신학을 전공한 내게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라는 말처럼, 신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교회는 ’성금요일’이라 부르며, 성일로 기념한다. 그러나 사복음서를 연구해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요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폭로(!)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자 함이 아니다. 학문에도 단계가 있고, 배움에도 순서가 있듯이 그러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이해와 지식적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지적하는데, 나는 성경 안에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오류라고 보지는 않는다.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일 기독교가 성경을 짜집기 하며 교리를 만들어내면서 ’역사적 예수’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왜곡하고자 했다면, "왜 성경 안에 존재하는 그러한 모순을 그대로 놓아두었을까?" 신학이 아닌 신앙적인 견지에서 나는 성경에 나타는 모순을 영적인 신비, 또는 하나님의 수수께끼라고 보고 싶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주님의 가르침은 오직 거듭난 제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을 가능성을 컴퓨터로 분석했더니 그 가능성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분명 <파우스트>의 저자는 괴테가 맞지만, < 파우스트>에 녹아 있는 사상과 철학과 묘사와 표현은 오로지 괴테 자신에게서 나온 그 무엇이 아니라, 괴테가 받은 ’영향’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의 문서로만 접근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로만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예수 왜곡의 역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역사비평, 즉 과학적 비평의 결과물이다. 이 책을 특별히 신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성경 안에 나타나는 모순과 교회의 전통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도전과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학문(신학)의 즐거움이 믿음의 토대를 다지고, 그 뿌리를 더 든든히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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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지음 / 강 주헌 옮김
가장 먼저 이 책은 비평적(Critical)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책임을 밝혀두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 역시, 성서해석학의 방법 중 하나인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 해석을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역사비평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면 “고등비평(高等批評, higher criticism), 성서 각 책의 자료·연대·저자 및 역사적·사상적 배경 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방법. 상층비평(上層批評)이라고도 하며, 저급비평에 대립되는 말이다. 저급비평이 성서의 원문에 관한 연구인 데 반해, 그 저작연대와 저자, 또 역사적·사상적 배경 등 성서에 관한 문학적·역사적 비평·연구를 주안으로 하므로, '문학비평' 또는 '역사비평'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는 1783년 J.G.아이히 호른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방법은 18∼19세기 J. 베르하우젠, F.파울 등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참고 : http://100.naver.com/100.nhn?docid=12858 2010년06월25일 검색).”
이 책의 저자 Bart D. Ehrman은 성서 비평학자로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종교학부 교수이다. 복음주의 신학교라 할 수 있는 무디성서학교를 거쳐 휘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비교적 진보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트 어만은 사본학의 거장 브루스 메츠거 박사의 제자이며, 신약성경과 초기기독교회사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전문 분야로는 역사적 예수, 초기 기독교 외전, 사도 교부, 그리고 신약 성경의 필사 전통 등이다. 그리고 현 www.bartdehrman.com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에 많은 오류들과 상충되는 부분들이 내포되어 있음으로 그것을 전제로 역사적 예수가 현 성서에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음을 증명해 가고 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과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성서는 완전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방법)’을 믿고 따랐지만 프린스턴에서 수학하며 점착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를 점하며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을 버리고 성서는 신의 계시로서의 책이기 보다 인간이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임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기록된 내용대로의 신적 권위를 가지신 그런 예수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서의 내용이 하나도 오류가 없음을 근거로 하는 믿음과는 확연히 다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성서의 원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성서 내용은 처음부터 글자로 쓰여 진 것이 아리라 오랜 기간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다가 글자로 쓰여 진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 오류가 있었고, 그 오류는 글로 옮긴 저자들의 개인적 신학 사상에 따라 내용의 첨가 혹은 삭제, 그리고 대필 또는 위작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타나 동일 사건들이 서로 다름 가운데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들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시기적인 것이나 장소적인 것과 같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이 다른 것은 오류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저자의 주장 역시 하나의 학설일 뿐임을 밝혀두고 싶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성서의 원전을 남겨두지 않으셨을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도록 오랜 기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한 참후에야 글자로 기록하여 남기도록 하셨을까? 그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또 다른 의문으로 각자가 해결해야 할 신앙의 문제일 것이다.
얼마 전(2010년 06월 12일) ‘개혁주의생명신학회’에서 현재 웨스트몬트대학 성서학 교수이시며, 구약신학의 대가이신 ‘트렘퍼 롱맨(Dr. Tremper Longman, III)’ 박사를 초청하여 정기학술대회를 가졌는데 그는 이 학술 대회에서 ‘비평적 방법론들의 약속과 함정들’에 대하여 주제 강연을 하였었다. 그는 이 학술대회에서 “바람직한 성경해석 방법으로 1970, 80년대에 발전한 문학적 접근방법(literary approach)을 추천한다. 문학적 접근방법은 마지막 형태의 성경본문을 조명하기 위해 이야기와 시 연구에서 쓰이는 용어, 개념, 관습 등을 사용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본문 지향적’(text-oriented) 해석방법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문학적 해석방법 가운데 장르분석 역시 본문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고 말하기고 하였다.
사람의 생각은 그 생각의 바탕을 어디에 근거를 두고 시작하느냐, 그리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향해 출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바트 어만은, 그 생각의 시작부터 성서는 서로 상충되는 다른 점들로 인해 오류가 많고, 그래서 성서에 소개된 예수는 역사적으로 왜곡된(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혹은 신학의 관점에 따라 표현된) 인물이라는 결론을 가져왔다. 다른 생각을 바탕으로 성서를 읽어간다면 그 결론이 어떻게 나오게 될까? 이것은 성서를 읽는 독자들의 믿음의 관점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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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옮겨오다 보니까 글이 좀 많이 길어졋다 아마 보시는 분들이나 조다윗 너도 보느라 눈이 좀 고생햇을거다...
뭐 어찌됫건 정독햇다면 수고햇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 내가 이 사이트에서 바트 어만의 이 책을 본 저자들의 감상평과 후기, 보충설명 등을 첨부햇는데 보니 어떤가?
성경이 100% 절대 오류나 거짓, 모순이 없는 완벽한 진리의 말씀의 책은 아니다 라는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인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
참고로 니가 내가 가지고 온 저 위의 감상평 몇개를 쭉 읽어보면 알겟지만 저 감상평을 쓴 자들도 너랑 같은 기독교란 종교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다
보면 알겟지만 글마다 "예수님" "하나님" 운운하는거와 또 성경과 기독교 예수를 욕하고 비방하고 비하하고 깎아내리는 말들이나 단어가 없는것으로 보아 절대 "기독교 안티세력" 에 속한 사람들도 아니라는건 너도 금방 알수 잇을거다 조다윗.
근데 보니 어떤가? 심지어 니와 같은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절대 오류나 모순이 없다 라는 말은 틀렷다 모순과 오류가 잇다 그건 증거가 잇고 인정해야 한다 번역과정에서의 부풀려짐, 과대포장, 왜곡 등이 분명 잇엇다 라는말들을 하고잇다
너를 위해 이시간에 내가 친히 인터넷 검색을 하여 찾아보앗다
앞으로 니가 또 성경 난해구절이나 번역 오류 등에 대해서 얘기할지 함 지켜보겟다
그리고 내가 올려준 이 책을 읽은 기독교인들이 쓴 저 몇개 긴~ 감상평들 중에서 몇가지 문장을 따로 더 부각시켜서 너한테 잘 보이게끔 보여주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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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어느정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약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2)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인 신약은 오류와 모순의 정도가 조금 더하다.
3)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복음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전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에 성경에는 모순과 오류가 존재한다.
4)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오류를 만들어냈다. 하느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종용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은 인정할 때 더 자연스럽다.
5) ’절대’라는 부정은 강조하는 딱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느님이 보낸 가르침이란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인간이 해석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6)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란 내 믿음에 의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절대’ 오류가 없다라고 하는 기독교적 고집을 조금은 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틀림없고, 변함없는 분이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7) 성경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하고 기록했다면 성경에 오류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은연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우월의식으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우습게 알아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8)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가(성서무오류설)? 성경은 하나의 말씀대로 씌여졌는가(축자영감설)
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입론이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 유수의 신학대학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으나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거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가르칠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해주고 있을까?
9) 맹목적이고 구세기복적인 종교관이 유독히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내용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릴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10)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을 수평적 읽기를 통해 동일한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각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고 모순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부활, 메시아, 유다의 죽음, 종말의 도래 시점, 유다의 문제, 삼위일체, 구원의 문제, 유대인과 기독교의 관계 등에서.
11) 더구나 현존하는 복음서의 원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대부분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고, 예수의 사후 50년 이상 경과된 시점에서 구전되어 전해오는 이야기와 이전에 씌여진 복음서를 근간으로 씌여질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그 내용들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경우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저자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경우는 바울의 서한 집 포한 8권에 불과하다.
12)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와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하는 역사서에 예수와 관련된 언급이 거의 없고 위서든 성경이든 기독교와 관련된 복음서나 기록을 통해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3)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사복음서를 연구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과 불일치를 파헤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도 서로 다르다. 역사비평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가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요한이 아니다.
14) 저자 역시 처음에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과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성서는 완전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방법)’을 믿고 따랐지만 프린스턴에서 수학하며 점착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를 점하며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을 버리고 성서는 신의 계시로서의 책이기 보다 인간이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임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기록된 내용대로의 신적 권위를 가지신 그런 예수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서의 내용이 하나도 오류가 없음을 근거로 하는 믿음과는 확연히 다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15) 현재, 성서의 원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성서 내용은 처음부터 글자로 쓰여 진 것이 아리라 오랜 기간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다가 글자로 쓰여 진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 오류가 있었고, 그 오류는 글로 옮긴 저자들의 개인적 신학 사상에 따라 내용의 첨가 혹은 삭제, 그리고 대필 또는 위작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타나 동일 사건들이 서로 다름 가운데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들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시기적인 것이나 장소적인 것과 같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이 다른 것은 오류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바트 어만 지음 / 강 주헌 옮김
가장 먼저 이 책은 비평적(Critical)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책임을 밝혀두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 역시, 성서해석학의 방법 중 하나인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 해석을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역사비평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면 “고등비평(高等批評, higher criticism), 성서 각 책의 자료·연대·저자 및 역사적·사상적 배경 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방법. 상층비평(上層批評)이라고도 하며, 저급비평에 대립되는 말이다. 저급비평이 성서의 원문에 관한 연구인 데 반해, 그 저작연대와 저자, 또 역사적·사상적 배경 등 성서에 관한 문학적·역사적 비평·연구를 주안으로 하므로, '문학비평' 또는 '역사비평'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는 1783년 J.G.아이히 호른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방법은 18∼19세기 J. 베르하우젠, F.파울 등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참고 : http://100.naver.com/100.nhn?docid=12858 2010년06월25일 검색).”
이 책의 저자 Bart D. Ehrman은 성서 비평학자로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종교학부 교수이다. 복음주의 신학교라 할 수 있는 무디성서학교를 거쳐 휘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비교적 진보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트 어만은 사본학의 거장 브루스 메츠거 박사의 제자이며, 신약성경과 초기기독교회사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전문 분야로는 역사적 예수, 초기 기독교 외전, 사도 교부, 그리고 신약 성경의 필사 전통 등이다. 그리고 현 www.bartdehrman.com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에 많은 오류들과 상충되는 부분들이 내포되어 있음으로 그것을 전제로 역사적 예수가 현 성서에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음을 증명해 가고 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과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성서는 완전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방법)’을 믿고 따랐지만 프린스턴에서 수학하며 점착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를 점하며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을 버리고 성서는 신의 계시로서의 책이기 보다 인간이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임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기록된 내용대로의 신적 권위를 가지신 그런 예수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서의 내용이 하나도 오류가 없음을 근거로 하는 믿음과는 확연히 다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성서의 원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성서 내용은 처음부터 글자로 쓰여 진 것이 아리라 오랜 기간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다가 글자로 쓰여 진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 오류가 있었고, 그 오류는 글로 옮긴 저자들의 개인적 신학 사상에 따라 내용의 첨가 혹은 삭제, 그리고 대필 또는 위작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타나 동일 사건들이 서로 다름 가운데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들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시기적인 것이나 장소적인 것과 같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이 다른 것은 오류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저자의 주장 역시 하나의 학설일 뿐임을 밝혀두고 싶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성서의 원전을 남겨두지 않으셨을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도록 오랜 기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한 참후에야 글자로 기록하여 남기도록 하셨을까? 그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또 다른 의문으로 각자가 해결해야 할 신앙의 문제일 것이다.
얼마 전(2010년 06월 12일) ‘개혁주의생명신학회’에서 현재 웨스트몬트대학 성서학 교수이시며, 구약신학의 대가이신 ‘트렘퍼 롱맨(Dr. Tremper Longman, III)’ 박사를 초청하여 정기학술대회를 가졌는데 그는 이 학술 대회에서 ‘비평적 방법론들의 약속과 함정들’에 대하여 주제 강연을 하였었다. 그는 이 학술대회에서 “바람직한 성경해석 방법으로 1970, 80년대에 발전한 문학적 접근방법(literary approach)을 추천한다. 문학적 접근방법은 마지막 형태의 성경본문을 조명하기 위해 이야기와 시 연구에서 쓰이는 용어, 개념, 관습 등을 사용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저자가 의도했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본문 지향적’(text-oriented) 해석방법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문학적 해석방법 가운데 장르분석 역시 본문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고 말하기고 하였다.
사람의 생각은 그 생각의 바탕을 어디에 근거를 두고 시작하느냐, 그리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향해 출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바트 어만은, 그 생각의 시작부터 성서는 서로 상충되는 다른 점들로 인해 오류가 많고, 그래서 성서에 소개된 예수는 역사적으로 왜곡된(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혹은 신학의 관점에 따라 표현된) 인물이라는 결론을 가져왔다. 다른 생각을 바탕으로 성서를 읽어간다면 그 결론이 어떻게 나오게 될까? 이것은 성서를 읽는 독자들의 믿음의 관점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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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옮겨오다 보니까 글이 좀 많이 길어졋다 아마 보시는 분들이나 조다윗 너도 보느라 눈이 좀 고생햇을거다...
뭐 어찌됫건 정독햇다면 수고햇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 내가 이 사이트에서 바트 어만의 이 책을 본 저자들의 감상평과 후기, 보충설명 등을 첨부햇는데 보니 어떤가?
성경이 100% 절대 오류나 거짓, 모순이 없는 완벽한 진리의 말씀의 책은 아니다 라는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인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
참고로 니가 내가 가지고 온 저 위의 감상평 몇개를 쭉 읽어보면 알겟지만 저 감상평을 쓴 자들도 너랑 같은 기독교란 종교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다
보면 알겟지만 글마다 "예수님" "하나님" 운운하는거와 또 성경과 기독교 예수를 욕하고 비방하고 비하하고 깎아내리는 말들이나 단어가 없는것으로 보아 절대 "기독교 안티세력" 에 속한 사람들도 아니라는건 너도 금방 알수 잇을거다 조다윗.
근데 보니 어떤가? 심지어 니와 같은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절대 오류나 모순이 없다 라는 말은 틀렷다 모순과 오류가 잇다 그건 증거가 잇고 인정해야 한다 번역과정에서의 부풀려짐, 과대포장, 왜곡 등이 분명 잇엇다 라는말들을 하고잇다
너를 위해 이시간에 내가 친히 인터넷 검색을 하여 찾아보앗다
앞으로 니가 또 성경 난해구절이나 번역 오류 등에 대해서 얘기할지 함 지켜보겟다
그리고 내가 올려준 이 책을 읽은 기독교인들이 쓴 저 몇개 긴~ 감상평들 중에서 몇가지 문장을 따로 더 부각시켜서 너한테 잘 보이게끔 보여주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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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어느정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약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2)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인 신약은 오류와 모순의 정도가 조금 더하다.
3)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복음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전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에 성경에는 모순과 오류가 존재한다.
4)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오류를 만들어냈다. 하느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종용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은 인정할 때 더 자연스럽다.
5) ’절대’라는 부정은 강조하는 딱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느님이 보낸 가르침이란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인간이 해석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6)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란 내 믿음에 의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절대’ 오류가 없다라고 하는 기독교적 고집을 조금은 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틀림없고, 변함없는 분이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7) 성경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하고 기록했다면 성경에 오류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은연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우월의식으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우습게 알아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8)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가(성서무오류설)? 성경은 하나의 말씀대로 씌여졌는가(축자영감설)
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입론이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 유수의 신학대학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으나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거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가르칠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해주고 있을까?
9) 맹목적이고 구세기복적인 종교관이 유독히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내용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릴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10)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을 수평적 읽기를 통해 동일한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각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고 모순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부활, 메시아, 유다의 죽음, 종말의 도래 시점, 유다의 문제, 삼위일체, 구원의 문제, 유대인과 기독교의 관계 등에서.
11) 더구나 현존하는 복음서의 원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대부분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고, 예수의 사후 50년 이상 경과된 시점에서 구전되어 전해오는 이야기와 이전에 씌여진 복음서를 근간으로 씌여질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그 내용들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경우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저자가 명명백백히 밝혀진 경우는 바울의 서한 집 포한 8권에 불과하다.
12)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와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하는 역사서에 예수와 관련된 언급이 거의 없고 위서든 성경이든 기독교와 관련된 복음서나 기록을 통해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3)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사복음서를 연구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과 불일치를 파헤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도 서로 다르다. 역사비평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가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요한이 아니다.
14) 저자 역시 처음에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과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성서는 완전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방법)’을 믿고 따랐지만 프린스턴에서 수학하며 점착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를 점하며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을 버리고 성서는 신의 계시로서의 책이기 보다 인간이 자신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임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기록된 내용대로의 신적 권위를 가지신 그런 예수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서의 내용이 하나도 오류가 없음을 근거로 하는 믿음과는 확연히 다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15) 현재, 성서의 원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성서 내용은 처음부터 글자로 쓰여 진 것이 아리라 오랜 기간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다가 글자로 쓰여 진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 오류가 있었고, 그 오류는 글로 옮긴 저자들의 개인적 신학 사상에 따라 내용의 첨가 혹은 삭제, 그리고 대필 또는 위작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타나 동일 사건들이 서로 다름 가운데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들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시기적인 것이나 장소적인 것과 같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이 다른 것은 오류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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