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이교 신화 짜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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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고 우리 나라의 단군 신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어지고 안 믿어 지는 것은 어차피
성경과 그것을 믿고 보존해온 진정한 교회에서 찾아야만 할것 입니다
성경 의 구약은 예수의 예형적인 말씀의 기록이고
구약 자체는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 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생성 배경은 원래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착하기까지 약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광야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인 먹고 마실 것 조차 결핍된 온갖 위험이 가득 찬 죽음의 그림자가 짓게 드리워진 곳이지만 야훼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바위에서 샘물을 솟게 하여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느님께 대해 불평불만과 불충도 하였으나 절박한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에는 두 손을 높이 쳐들어 기도함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과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즉 신이 안 계신다고 느끼게 하는 광야에서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과의 만남을 체험했습니다.
이 점이 타민족의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와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이 그들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개입하셨다는 그 이유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 역사의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역사의 기록은 곧 성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이스라엘(유다)민족은 하느님께서 자기 민족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자기 민족사에게 어떻게 활동하셨는가를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세상에 역사(役事)하신 것을 기록한 여러 권의 책들을 한데 묶어서 정경(正經)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기원전 450년경까지는 모세오경 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그후 기원전 150년경이 되어서야 지금의 구약성서46권이 정경으로 확정 되었습니다.(개신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무조건 39권이라고 우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글로 씌어진 신약성서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초대교회의 복음선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복음서는 이러한 구전적전승(口傳的傳承)을 수록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와 복음” 은 성서라는 책이 있기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성서도 아예 처음부터 교회에서 생긴 책이며 교회를 위한 책이요.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해석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어떤 보고서처럼 씌어진 것이 아니고 신앙과 불신을 가름하는 편지요 소식이며 한마디로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오늘날의 신약성서로서 확정되기까지는 3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가르 칠 사명을 받은 유일한 교사입니다.
-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한 커다란 창고입니다.
또 성경은 교회의 책으로서 우리 손에 쥐여졌고 아직도 그런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상 누가 성경을 손에 들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대개 교회 안에서의 일일 것이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교회와 접촉을 갖게 되면서 부터 읽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교회라는 공동체와 그 신앙이 없었다면 성서가 과연 성서로서 오늘날까지 존속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문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 와 같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어떻든 , 교회가 없었다면(사실 1517년 이전에는 개신교회리는 이름 조차 없었습니다)
성서는 확실히 우연한 기회에 씌어진 가지각색의 저서들이 우연한 기회에 한데 모여 이루어진 책일 것이고 거기에 전해 오는 금언(金言)이나 속담(俗談)혹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처음에 읽어보면 그저 괴상하고 기이하게 보일 것이며 실상 그 깊은 의미와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얼른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성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나라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성령과 그의 능력”(Ⅰ고린토 2,4) 으로서 우리에게 성서를 증거하고 이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 아우구스띠노(개신교에서는 성 어거스틴)도 “하나이요 보편적인 교회(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없었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께서는 단 한 줄의 성서도 친히 쓰시지 않으셨고 또 제자들에게 성서를 쓰라고 명하신 적도 없습니다.
다만 사도 요한에게 묵시록을 기록하라고 묵도(黙禱)하신 적은 있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유다교를 없애시고 새로운 당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실 때 당신의 복음이 성서의 전파로 널리 퍼지시기를 명하지 않으시고 입을 통한 설교로 만민을 교화하시려 하셨습니다.
한편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하실 때 이미 있던 성서를 배포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가 10,16)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12제자와 72인의 또 다른 제자는 물론 초대교회 신자들 가운데 여덟 분만이 성서를 기록하였으며 네 복음서와 서간 등은 모두 어느 개인이나 어떤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또 그것(성서)은 교회 내의 어떤 폐습을 바로잡을 목적 또는 신자들의 행동 규범을 세워 줄 목적으로 하는 주교의 교서(敎書)같은 것이며 이것을 “성령의 영감을 받은 자가” 기록하였다고 교회가 인정한 교회 책들의 집합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교회는 이 성경을 믿기 때문이지요
댓글목록






회전안마님의 댓글
흐음.... 매우 의미있는 글이네요.
졸려워서 요 부분만.
광야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인 먹고 마실 것 조차 결핍된 온갖 위험이 가득 찬 죽음의 그림자가 짓게 드리워진 곳이지만 야훼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바위에서 샘물을 솟게 하여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동굴은 동물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인 먹고 마실 것조차 결핍된 온갖 위험이 가득 찬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워
진 곳이지만 환웅님께서는 곰에게 쑥갓과 마늘을 먹이시고 사람을 만드셧습니다.
광야에 터진 이스라엘 민족은 개독을 낳았고,
동굴에 칩거해 사람이 된 곰은 그냥 사람을 낳았습니다.
만족하슈?emoticon_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