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님을 보내며..한가지 잣대로만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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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님께서 작고하신지 49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통 장례 절차에 따르면,
49제(사망후 49일째)는, 고인이 이승의 연을 완전히 끊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에,
그간의 고인을 추모하는 공지글을 내리면서,
같이 생각해 보고자, 몇가지를 이야기 해봅니다.
첫번째, 법적으로...
고인의 마지막 행동을 법으로 보면, 분명 범죄행위임은 분명합니다.
이에, 형법의 내용만을 가지고, "방화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분명 형법에 명시된 죗값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거기에, 사람이 상해를 입었거나, 사망할수도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히 방화(형법 제 165조 )라는 조항만을 가지고 판단한 결과로 보여집니다.
형법 15조1항에 의하면, 인식한 사실이 발생한 사실보다 경(가벼움)할때는 중한죄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형법 15조 2항을 보면, 결과를 예견할 수 없을때는 중한 죄로 볼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방화를 하기는 했으나,
사람이 피해를 본 것이 없으므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으면 어쩔거냐"는 말은 법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논리입니다.
또한, 방화전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한 것은 사람을 상해할 목적이 없음(형법 제26조)을 분명히 하였기에,
형법 53조 작량감경 조건에도 부합하여,
(초범-대부분의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됩니다, 사람을 상해할 의사가 없다는 점, 피해가 경미하다는 점.),
실제 형량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거기에, 판례로 보아도, 사람을 상해하지 않았다면, 실제 판결된 형량은 형법상의 기준보다 한참 낮은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형법의 법규만 가지고 이야기 한다고 해도,
고인의 행위를 "무기징역"에 처할 만큼 중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추론하여, 고인의 범죄사실에 더하여 이야기 하는것은,
형법 제308조(사자-죽은자-의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까.?
또한, 고인의 정신적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음에도,
"자살은 정신이상자만 하는거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형법 제311조(모욕)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안티라고 한다면,
확실한 근거를 기반으로 이야기 해야 할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추론하는 것과, 법 조항의 일부만 적용시켜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한, 고인의 정신적 상태에 대해서는 완벽히 알 수는 없겠지만,
고인이 남긴 글들을 토대로 하여, 정식적 상태를 가늠하여, 객관적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고인이 단지 "안티"라는 이유만으로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고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법조항을 들이대며, 고인의 행위, 정신적상태를 재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법을 아시는 안티라고 한다면,
형법 제158조(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의거하여,
사찰에 난입하여, 행사를 벌인 개독들의 처벌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두번째, 폭력은 무조건 안된다..???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상황은 어떨까요.?
유혈 폭력이 난무 했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승만 부패정권을 향한 4. 19 혁명,
6.29 선언을 이끌어 냈던, 당시의 폭력적 시위도 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70년대 이후,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화시위에서는,
수많은 화염병이 난무하였으며, 실제로 많은 경찰 버스등이 화재로 유실되거나, 파괴 되기도 했습니다.
모두 부당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 말을 해대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어이없게도, 정치권력을 가지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력으로 무장한 폭력을 행사했던, 전*환, 박*희 정권,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논리는
역사적, 철학적 인식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절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아실 것이며,
또한,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를 부정하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세번째, 한가지 잣대로만...
지난 49일을 지내면서, 여러가지 주장들을 보았습니다.
법적인 잣대로만 판단하는 주장,
폭력 금지라는 잣대로만 판단하는 주장...
심지어는 사이트에서 폭력을 옹호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다른예로, 과학-특히 화학적 잣대로 사람을 이야기 해 보면,
몸무게 72kg 의 사람은,
43kg의 산소,17kg의 탄소,7kg의 수소,2kg의 질소,2kg의 칼슘,170g의 염소,11g의 황,
99g의 칼륨,85g의 나트륨,7g의 철,71g의 불소,57g의 마그네슘,43g의 규소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재료를 섞어 놓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가지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가지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안티로서의 판단능력은 결여 되어있는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네번째, 우리는 왜 교진추를 문제삼는가...
1977년 4월 20일,
전남 광주 무등산 기슭에서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른바 "무등산 타잔 사건" 이라고 불리웠던 사건인데,
무등산 기슭 무허가 움막집, 판자집들(무등산 덕산골)이 모여있는 곳 에서
4명이 망치로 살해되고, 1명은 머리를 크게 다친 사건입니다.
피해자(사망자, 부상자)들은 광주 동구청 소속의 철거반원들이었으며,
가해자(살인자)는 당시 21세의 박흥순 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가해자는 사제총을 발사하며, 철거반원을 위협하고,
그들의 철거용 망치를 빼앗아, 철거반원의 머리를 가격하여, 살인을 하게 됩니다.
범인은 사건 직후, 도주를 하였으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친척집에서 검거되어,
사건 발생 2일만인 22일 광주로 압송,
살인, 공무집행방해, 총포화약류 단속법 위반등의 혐의로 긴급구속 됩니다.
그러나, 박흥순은 교도소에서 탈옥을 하기도 합니다.
형법상으로만 봤을때,
범인은 법을 어기고, 무허가 건물을 지어 살던 사람이며,
흉악한 살인범이며, 탈옥수 입니다.
더구나, 당시의 보도를 보면, 하나같이 피의자 박흥순을 엽기적인 살인마로 묘사하였으며,
무등산 기슭의 주민들을 사이비종교 집단(무당촌), 범죄자 소굴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흥순의 구명운동을 벌인 단체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무등산 타잔 박흥순"라는 영화를 보시면, 박흥순의 실체와 당시의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박흥순은 사형(1980년 12월 24일)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살인까지 하게 된 동기에 주목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박흥순의 살인은, 무허가 건물 거주자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부른 비극이었습니다.
즉, 피의자 박흥순도,
그의 손에 미명을 달리한 철거반원 네분과 치명적 손상을 입은 철거반원 한분..
모두 피해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단순히 법적으로만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확실하겠지만,
법보다 한 차원 높은 인간적 삶의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법에 의한, 경제적 논리에 의한 피해자 일 뿐입니다.
인간적 삶의 가치 보다 법과 경제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후, 박흥순 사건을 계기로,
무허가 주택 거주자 라고 해도, 철거등 퇴거조치를 취할때에는,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도록 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맥락으로,
교진추의 행위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어느분의 주장처럼, 과학교과서에 종교적 신념을 넣을 수 없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면,
교진추의 행위는 다른 법을 교묘히 악용하여, 교과부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또한, 형법 제 144조 1항(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136조, 제138조와 제140조 내지 전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각조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에 의거하여,
그들의 행위가 위법성이 있음과,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 배움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 입니다.
이는 단순히 BRIC(과학 단체)만 대응할 문제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고인의 행적에 대해 언급을 삼가하자고 했던 이유는,
마지막 행위만을 문제삼아,
한가지 잣대로만 고인을 평가하여,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정신적 피해가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종교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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