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페이지 정보
본문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위 말씀은 이방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교회(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구원얻고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인 성도이지만 실상은 그 주님은 그들 마음 문밖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그 사람들의 실재로의 주인은 여전히 그들 자신이고,
주님은 명목상의 주인으로 그들 문밖에 계시며 그들 삶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실 수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주께서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겠다" 라고 간절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 너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너를...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이루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아는 것과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주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할만 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말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인용하기도 하지만(더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사용하지만 본 뜻과는 다름) 자신들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해보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믿는이들)의 실상을 볼때,
아마 대부분의 성도라 하는 사람들의 실상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과 똑같이 자신들은 예수께서 주인이시라고 스스로 여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과 같이 주께서는 완전히 문 밖에 계시며
오직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주께서 문 안에는 들어 오셨지만 겨우 모퉁이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계시고
여전히 자신들로 거의 살아가는 사람들,
혹 어떤 이들은 주께서 조금씩 그들의 삶에 간섭하시고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시는 사람들, 이렇게 여러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자신들을 구원(구속)해주시고
주인이 되셨으며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의 기뻐하심을 쫒아 갈때,
스스로의 무력함과,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것과 너무나 다른 자신의 욕구들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오직 무력해지고 주께서 나를 대신 사시겠다는 복음만이 참 길임을 인정하게 되고,
주여 당신이 주인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자주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분의 백성들이
점점 그분을 주인으로 모셔들여 주께서 점점 그에게 실재로의 주인이 되시므로
그 자신이 점점 모서리로, 밖으로 내몰려지고 그분이 안방차지를 하시게 되고 자신이 이제 문 밖으로 내몰려 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시며 이렇게 이루어져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굴러오신 돌이신 주께서
박혔던 돌인 나를 몰아내고 주객이 전도되는 이것이 온전한 그분의 구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이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점진적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그분의 어떠하심과, 내 자신의 실상이 조금씩 밝혀지는 만큼씩
나와 그분의 실제로의 내 삶에 주인의 역할이 바뀌어 가는 것, 이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온전히 내게 주인이 되셔서 바울께서 하신 것 같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렇게 고백하게 될 때에 우리들에게 어떤 것이 법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분의 생명이 내게 사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들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들이 될 것입니다.
아마 바울의 말년의 삶은 이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잘해서가 아니고
내게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그분을 받아들이게 되는 삶, 이것이 복된 삶입니다.
만일 내가 무엇을 아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 만큼은 내가 보존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론입니다.
내가 참으로 길이 없고 방법이 없을 때 방법이신 주님을 찾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할 수 있다고 여기시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그 분 앞에서 깊이 살피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처음에 문 밖에(모든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부터 시작) 계시던 주께서 점점 내 안에 들어 오시고
결국에 나를 몰아내시고 주객이 전도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주께서 나의 실상을 아시니 내가 그저 엎드립니다.
불쌍해서 긍휼을 베푸실 수 밖에 없는 자로 될때 까지....
샬롬~~~
댓글목록


megod님의 댓글
노예본능이 작열하는구나
이러니 먹사들이 거저 말장난으로 먹고살아가는거지
너희 주는 니네실상을 아는데 애들 여름에 물로 떠내려 죽이고
차사고로 죽이니
예수귀신의 귱휼이 실상의 삶에 지옥을 만드나보구나
쌀놈이라고 말하는 니 주둥이는 부끄러움조차 없으니
장자 니 조상님들의 얼굴을 어떻게 보려느냐 ,,
얼굴마담을 예수로 뒀다고
니 삶의 본질이 변한다거나 니 삶이 윤택해 지는건 아니라는것은 아는가?
그건 귀신이 있다고 현실적인 니 삶에 물컵하나 옮기수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 ,,,,
제발 정신차려라 주둥이로만 남의 나라 기복귀신을 거룩하게 믿지말고 ,,
현실의 니 부모님부터 니 주변인연부터 겸손하게 잘모시는것이
니가 지금부터 당장 할일이니라 ,,,,

그레이브님의 댓글
당연히 자신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거기에서 예수 허깨비 따위가 할 수 있는 역활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아를 상실 하고 예수 허꺠비 따위와 같은 허깨비에 홀렸을때 니네 예수 구라 쟁이들이 아닌 세상의 멀쩡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미쳤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멀쩡한 남이 미치기를 바라는 역겨운 미신은 니네 예수 구라 미신 밖에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야훼 허깨비가 진정 전지전능하다면 지깟 놈 꼴같지 않은 구라 따위에 홀려 달라 구걸 할 필요도 없겠죠.
이 더운 날씨에 오늘도 그렇게 구라를 치면 칠 수록 모순만 늘어가는 가소로운 예수 구라, 멀쩡한 이들이 자신들 처럼 미쳐 돌기를 바라는 더러운 예수 구라, 그 토악질나는 지껄여 대시며 예수 구라의 저능함과 사악함을 직접 증명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