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썬아.. 따악! 하나만 물어보자.. ^^ - 레이니 썬아 노올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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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라"(בר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창조하시다는 말입니다. 바라는 무에서 유로 우주의 모든 물질을 지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 물질의 조합으로 만들 수 없는 생명을 만드신 일(창1:21), 흙에서 나온 여러 물질의 물리적 조합으로는 이루어진 육체와 완전 분리된 것으로서 인격의 근본적 주체인 영혼을 지어내신 (창1:27)것과 같이 그 이전의 과거와는 완전 단절된 상태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경우에 [바라]가 사용됩니다.
2. "아사"(העש)-유의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것, 아사는 기존 재료를 이용하여 어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make)을 포괄적으로 가리킵니다.
3."야차르"(יצר)는 토기장이가 흙으로 토기를 만들듯이 주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기술과 결과를 강조한 말로서 기존 재료로 새로운 모양을 꾸며내는 것(form)을 말합니다.
4."바나"(הנב)는 어떤 물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주로 강조하는 것으로서 벽돌로 성벽을 쌓는 것과 같이 새로운 물건을 차근 차근 지어가는 행동(build)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바라(창조하다)의 내용에는 아사와 야차르와 바나도 부분적으로 포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사도 유에서 유를 만들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 내용에는 바라와 야차르와 바나도 부분적으로 포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보고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무조건 규정할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다음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명교회의 김종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창 1:1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바라”이며 1:3부터는 이미 창조된 것을 조성하거나 다시 회복시켜 만들고 계시는 “아싸”입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절들이 창 2:3 과 2:4로, 창 2:3은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미치시고”로 “창조하시며 (바라)”와 “만드시던(아싸)”을 잘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 2:4은 개역성경 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로 되어있지만 원문으로 직역해보면 “이것들이 그 하늘들과 그 땅이 창조(바라)되던 날에, 땅과 하늘들을 만드시던(아싸) 날에, 그 개요들이다.”라고 구별하고 있습니다.
곧 창 1:1에는 하늘들과 땅을 “창조(바라)”하셨고, 창 1:3부터는 그 순서가 바뀌어 땅과 하늘들, 그리고 “바라”가 “아싸”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들과 땅을 “바라”하셨고 그 후 셋째 날부터 땅과 하늘들을 “아싸” 곧 회복하여 조성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은 이미 있어서 물 밑에 잠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최초의 창조(바라) 때는 하늘들과 땅의 순서였지만 셋째 날부터 회복의 때에는 땅과 하늘들의 순서로 “아싸”하신 것입니다.
이 글은 바라와 아사를 그 말의 본 의미를 잘 살려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아사는 유에서 유를 만든 것이다.
이 의미를 그대로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음의 내용을 봅시다.
창세기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내용은 어류와 조류를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라를 크게 치중하면서 아사를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류와 조류가 생긴다는 것은 창조하다와 만들다가 결합되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창조하다는 것은 구상력을 발동하다는 내용도 있으며 만들다는 것은 이미 구상력은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형상화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봅시다.
창세기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서는 만들다는 아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바라와 아사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만들다는 것에 큰 부분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는 만드는 것에 대한 구상력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라에는 구상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사에는 구상력보다는 만들다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짐승과 가축을 그 종류대로 만드는데 바라에 해당하는 구상력이 동원되지 않았겠습니까?
구상력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라는 표현에는 아사가 사용되었지만 그 내용에는 바라와 아사가 동시에 표현되고 있는 내용이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석은 거기에 맞게 적절하게 해야지
남의 글을 작살 내겠다는 심보로 표현하면 결국 편협한 각도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만다는 생각이 됩니다.
님은 저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댓글목록



성경은진실님의 댓글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만일 레이니 썬이
make money.
Create money.
을 설명할 때
돈을 만들다 안에는 돈을 만드는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돈을 창조하다 안에는 돈을 만드는 구상력이 있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돈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어떤 돈을 만든다는 구상력은 이루어진 다음 상황을 의미하며
돈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떤 돈을 만든다는 구상력을 강하게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만들었다는 내용도 포함이 된다.
라고 말하였다면 님은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하겠지요?
님과 같은 편이니까요.
님이 반박하는 수준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성경은진실님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제가 언제 구분하지 않았나요.
바라가 나온 부분은 창조하였다고 말하였구요
아사가 나온 부분은 만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문제는 "생물을 창조하였다고 말하였다고 하면서 생물을 만들었다고 다른 부분에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모순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입니까?
그리고 님은 "아차르"를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그것을 일찍 알고 있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제가 바라와 아사를 가지고 레이니 썬과 실강이를 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차르"까지 끄집어내서 논의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