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즐거운 설교에 대한 이유없는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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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님께...![]()
우선 기독교를 반대하는 안티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착한 기독교인과 나쁜 기독교인으로 나뉘어지지요.
그건, 안티나 기독교인들도 모두 동감할겁니다.하지만, 착한기독교인과
나쁜 기독교인의 이분법적인 분별을 안티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별은 기독교인들이 하지요.
누가 더 착한 기독교인인가?에 대한 질문은
서로 이단으로 칭하는 과정을 거치다 쪽수 많은놈들이 착해지더라구요.
안티들이 기독교인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지적하는것은 본질에 대한 현상만
부각시키는 행위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지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절대 그런분이 아니다. 어느 집단체에 가던 그런애덜이
있기 마련인데 그 사람을 비판해야지 기독교를 욕하면 일반화의 오류다.
뭐...이런식으로요.
맞는 말입니다.해서, 안티들은 기독교인을 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그 무엇이 저들의 저런 행위를 유발시키는가에 대한
생각을 시발점으로 삼을 뿐이지요.또는,어짜피 그인간이 그인간이라면
기독교는 과연 인간에게 필요한것인가? 뭐 이런 실용적인 의문점도
시발점이 될수 있겟네요.
노예가 노예일수 밖에 없는것은 노예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조금만 객관성을 갖고 다시 바라본다면
자신이 왜 노예인가를 알수 있을테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노예의 존재를 영속시킵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은 신앙인이지만, 타인들은 그들을 신앙인으로 부르지 않고 기독교인으로
신앙인과 따로 분리를 합니다.안티는 기독교인이라는 그들이 왜 저렇게 유별난지
일반 신앙인들과 왜 다른지를 그들의 행동을 고발함과 동시에 종교인으로서의 그들을
그런 행동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탐구해 보지요.
그래서,교리를 벗겨보고 공격합니다.
안티들의 교리공격이 기존 기독교인들을 전향시킬 확률은 적겟지만, 교리에 대한 안티들의
공격은 적어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기독교인들로 전향될 확률을 줄일것은
확실합니다. 님도 그것을 걱정하듯이요.
하지만, 쫄지 마세요.
진실과 진리는 믿는자들의 쪽수로 결정되는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
무오,오류,변개.
신학자 웨인 그루뎀의 말씀은 기독교인들의 뇌구조를 잘 파악하게끔 하는
사례인것 같습니다.올려주셔서 고맙고요.
"성경원문은 사실과 반대되는 그 어느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이문장에서의 사실은 진실이겟지요? 즉 성경에 나오는 팩트의 오류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진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시는것 같아요.
제 해석의 근거는 바로 뒷문장에 있습니다.
"어느 한 주제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사실들을
다 말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 주제에 관해
모든 것이 참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말은 매우 교묘하게 이미 완성체로 읽히는 성경과 그 후에 발견되는 사해문서,나그함마디 문서의
이질성을 포괄해서 오류를 해결하기는 합니다.하지만,여전히 의문점이 남지요.
그럼, 각 문서의 어떤 구절이 주제인가?라는 의문 말입니다.
한마디로 주제파악이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존 스타트의 말로 님의 주장을 확장 하셧네요.
이런 신학자가 계셧다는것도 참신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말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진리를 얘기하는데에는 언어적 한계성이 있지요.버뜨, 인간은
그 한계성을 극복할 방법이 없습니다.말씀을 귀로 듣고
언어로 해석해야지, 조즈로 듣고 외계어로 해석할수는 없잖아요.
언어상의 오류는 믿음으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시겟지요?
그래서 1Km의 비유를 드신거 같아요.
"나는 서울역에서 1km 조금 넘게 떨어진 곳에 산다"라는 말은 님의 주장대로
정밀하지는 않지만 무오하지도 않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상황의 거리개념을
공론 (公論)이라고 칭하지요.
1KM라는 거리에 대해서 모두 공적인 거리개념을 공유하기때문에 정밀하지 않아도
이런 서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그 이유는 좀 어의 없으시겟지만
그 거리는 무오성과 진리 또는 정밀성에도 별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내가 집에서 1KM남짓한 서울역으로 차를 몰고가는도중 교통사고가 났다면
사고의 현장에 대한 위치는 공론적 거리개념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밀성이 요구되지요.
사고나기 이전 몇미터 전에서 브레이크를 밟앗는지 U-마크를 확인하고
과속이었는지 아니면 도로법 위반이엇는지를 정밀하게 판단 해야 합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져야 이 사건은 억울한 사람도 없고
문제해결 과정에 이익을 보는 사람도 없게 되지요.
과거의 진실성은 팩트의 정확성을 전제로 합니다.
"무오성(inerrancy)이란
진정성 그리고 진실성(truthfulness)과 관련된 것이지
보고된 사건의 정밀도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님의 주장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정정해 보겟습니다.
"무오성(inerrancy)이란
진정성 그리고 진실성(truthfulness)과는 관련이 없는 성질이고
무오성은 정밀성 (nicety)과 비스무리한 말이다.그 반댓말은 오류이다.
성경은 무오는 둘째치고 정밀하지도 않다.그리고 오류투성이이다.
라고 정의 하는게 옳을듯 합니다."
성경의 형성과정에서 여러가지 변개가 있었다는것은 인정하시는것
같아요. 그럼, 무엇이 어떤 이들에 의해 조작되었고 왜 조작되었지를 보는것도
안티들의 취미이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의무일겁니다.
물론, 님은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걸 인정하는걸로
쫑내고 속편하게...
그렇지만 그것들 모두 진실을 얘기하니까 기독교인으로 살자!
해버리면 심신이 편해지겟지요?
차라리, 차카게 삽시다.
등짝에 문신좀 있으면 어때요.![]()
부록.
질문: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성경의 무오성 주장입니다.
님들께서는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횡설수설 바이블도 있구요.아래에 케일라님,레이니썬님이
올려주신 글 한번 읽어 보실 필요 없겟지요?
무오성이 진정성이라면 오류투성이인 성경은 왜 읽어요?
진정성이 없는데....![]()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미친놈이 칼을 가지고 확신까지 담지하고 있을때이다. 그 미친놈은? 개독!
댓글목록

megod님의 댓글
뭘 모르시네 안마님이 ㅎ 진정성따위는 개라주라는것이쥐요
어쨋든저렇게 믿다보면 죽을때 천국이 보장 되었다는
착각에 빠진 미친것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 먹습니다
어느 동네 미친놈 하나가 철학적 고뇌를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이 말하면 한참 정상적인것같이 말하고난후에
헷깔리는 미친소리를 또 하지요
반복되는 저들의 지성을 존재하는줄알고
자꾸 말해보지만 돌아오는것은 또 똑같은 미친소리지요
안마님 글 잘 봤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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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님의 댓글
설교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잘 봤습니다.
제가 생각해 본 내용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시는군요.
먼저, 성경에는 분명 오류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으로서는 그 오류를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다는걸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같은 기독교인들과 나눌때, 항상 듣는 말이 있읍니다.
"시험 받고 있는거 아니냐"는 말인데요.
여기서는 최소한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아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하다고나 할까요?
어줍잖은 글들이지만 제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성경을 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