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 현세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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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복음주의 목사인 롭 벨이 "지옥은 없다"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도 나름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어서,
"롭 벨은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고 사실 본래 하고 싶었던 말은...."이라는 식의 어거지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사실, 지옥과 천국이라는 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구약에서 언급된 쉐올, 음부 등은
지금처럼 체계화된 지옥이라기 보다는 "일체가 정지된 영혼의 감옥이나 보관소" 라는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무한한 고통이라기 보다는 "보살핌에서 외면되어 쳐박혀서 방치되리라." 라는 것이지요.
구약 초창기의 야훼는 그야말로 유대민족의 민족신이었습니다.
유대민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살인, 강간, 약탈, 방화, 거짓말, 사기 등등) 허락하는 그런 존재였지요.
여기서 제외되어 추방당하거나 방치되는 것이 음부나 지옥이었습니다.
이런 일차원적인 원시신앙의 형태가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를 통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조로아스터 교를 만나면서 구약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데요.
사실, 그 전의 구약에서는 "선도 악도 모두 야훼의 것이다." 라는 것이었으나,
이후, 타락한 천사(사탄)가 야훼에게 적대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가장 중요한 종말론과 메시아라는 교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유대교의 변화 속에 여러 영지주의적 유대교 분파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해문서에서 예수보다 백년이상 앞서서 기록된 메시아(선생)도 그러한 영지주의적 유대교 분파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사실 초기 기독교에는 이러한 영지주의적인 전통이 깊게 스며 있었기 때문에 천국 지옥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지주의적 교리로 보면, 어차피 세상이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이 심판의 날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세상이 안 끝나는 겁니다.
더구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유(제국 통치의 용의성)기독교를 인정하고
당시의 주교 318명을 모아놓고 신약을 편찬하고,
니케아신경(사도신경)을 지어내고, 야훼와 예수는 동격이다(삼위일체의 근간)라고 선언합니다.
이 배후에는 정치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려는 일군의 무리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콘스탄티누스는 절대로 기독교인이 아니었거든요.
(무적의 태양, 미트라교도였습니다.)
초기 기독교까지만해도 어느정도 배타적이고 격리적인 생활을 통해 종말을 기다리며 착하게(?) 살자던 기독교는 - 전적으로 영지주의적인 모습입니다 - 이제 완전히 세상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요.
이러다 보니 이전에 종말을 기다리며 살던 모습은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 이겁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바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말 잘들어 그래야 천국 가! 아니면 지옥가서 영원한 고통만 느낄 뿐이야! "
중세를 거치면서 지옥의 장치들은 점점 정교해집니다.
반면 천국은 훨씬 추상적으로 묘사됩니다.
한마디로 "공포정치"!!
그 과정에서 온갖 구약과 신약의 구절들을 싹 쓸어서 자신들의 지옥이론에 적용합니다.
여기 봐라 이러이러하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요.
(아시다시피 바이블처럼 자기모순적이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책은 흔하지 않습니다.^^)
이런한 개념들은 대중을 통제하기에 너무도 유용해서인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이 "지옥이론"의 약발이 슬슬 떨어져가기도 했습니다.
이래서 등장한 것이 80년대 이 후 미국을 휩쓸어 버린 "번영신학"입니다.
전세계 대형 교회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지요.
이 이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브라함과 다윗, 솔로몬입니다.
"말 잘들으면 지금 바로 하나님의 복을 준다. 잘 사는 것은 은혜와 축복이다."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알려진 인물들을 인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지옥과 천국, 현세의 복 등...
개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허구라는 겁니다.
술한잔 마시고, 횡설수설 되는데로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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