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바이블 204 - 마태의 구라(예수탄생의 예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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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특히 마태를 보면,
구약에서 예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몇번 나온다.
그 예언에 대해 확인해 보자.
마태 1
21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약의 예언이라며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을 또 거론하는건 뭘까.???
구약의 임마누엘에 대해 찾아보자.
이사야 7
14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같은 내용이 이사야서 7장에 나오는데....
내용 전체를 보면,
아람과 에브라임 이라는 나라가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
왕과 백성들이 걱정을 하던 시기의 이야기 이다.
이에, 유다왕 "아하스"에게 처녀의 몸에서 임마누엘이라는 아기가 태어날 것이며,
이 아기가 선악을 알게되는 나이쯤에 "유다"와"에브라임"이 멸망할 것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이다.
아무리 봐도 임마누엘이라는 아기의 탄생은 전쟁이 끝나는 시기를 알려주는 내용밖에 없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말 외엔, 예수와의 연개성을 찾을 수 없다.
처녀의 몸이라는 말때문인지, 개독들은 이말을 예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데,
신약에 나오는 처녀가 잉태한다는 내용은 가톨릭에서 번역오류라고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사야7:14를 인용한것은 마태가 이사야서의 구절을 잘못 이해 한 것 으로 판정 된다." [Catholic Encyclopedia. xv, 451.])
즉, 마태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끼워 넣은 것 되겠다.
마태는 이외에도 상관없는 내용을 넣어 예수의 탄생이 예언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다뤄볼 예정이다.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종교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의 댓글
아무리 안티라고 해도 사실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성경이 횡설수설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심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횡설수설 해석한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쓴 문장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문장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의 형성 과정에서 자신들이 예수를 신성시하면서 구약의 이사야서의 내용이 마치 예수의 탄생을 가리키는 문장이라고 해석하고 우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정설인 것처럼 굳어진 것 뿐입니다.
이사야서는 상징이 극도로 나타나는 선지서이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에서 이 책은 제대로 해석은 커녕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고대문학과 셈족 게통의 언어학을 공부해 보면 이사야서의 내용이 수면 위로 나타납니다. 이사야서는 예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책입니다. 신약에서 예수의 탄생에 되괸련되어 단지 이사야서를 참고했을 뿐입니다.
나그 함마디 문서와 사해문서와 같은 자료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100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이천년 동안 서구세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분석을 하기도 전에 개독들에게서 들은 이런 저런 엉터리 해석으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 천년 동안 인간세계에 존해재하면서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자세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요.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반론을 제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위에서 말한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이름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하라'라는 뜻은 그 이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로 세워질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고대인은 이름이나 지명에 매우 깊은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이름이나 지명을 읽을 때에 이현대인처럼 단순히 사람으로 그리고 장소로 인식는하지는 않았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 의미부터 부각되는 것이 그 당시의 문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 메카니즘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가에 아담을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아담도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뒤에는 아담이란 인물이 설정이 되어서 교훈적인 내용이 전개가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에 아담이라고 부른 것은 태최초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담 (사람이란 뜻)을 강조하면서 아담의 어원에 있는 흙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존재이지만 신에 의해 영적 생명이 주어진다는 고대인의 생각을 그대로 사용되는 언어를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순전히 상징적인 의미이죠.
그런데 이런 고대인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없었던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문화와 종교 그리고 사상에 입각해서 이런 내용을 사실적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정말로 인간으로 그리고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첫번째 여자로 해석한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조금씩 성경의 상징성을 가지고 상당한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성경내에 얼마나 정교한 논리가 숨겨져 있는지를 글로 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을 보게되면 현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논리라든지 교리라든지 아니면 성경의 해석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비교만 해도 금새 드러날 것입니다. 독일이나 북구유럽에서는 이런 학문적 접근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물론이거니와 안도티들도 이런 다양한 접근방법을 모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네오님의 댓글
저는 처음 가입한 회원입니다.
안티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와 성경에 관해 여러가지 논란이 될만한 내용이을 이 사이트에서 자주 접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다루는 글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거의 대부분 기성 기독교에서 잘못 가르치는 성경해석과 교리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지식이나 학설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또 바른 내용은 무엇인지도 바로 제시할 때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