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탈출이행복] 나는 어째서 그리스도교를 떠났는가? //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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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예수? 유대신은
"피에 굶주린 잔인한 신"?
<나는 어째서 그리스도교를 떠났는가>
-한도명-
종교의 기만에 반기를 든 노신학자
나이 80에 이르는 어느 노신학자가 평생 그 자신의 몸과 영혼을 담그고 있던 종교에서 떠난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현실 교회에 대한 매서운 질타이자, 온몸을 던진 반격이며 그 종교의 "죽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목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종교를 팔아 자신들의 배를 살찌우고,
의미 없는 교리와 자기 자랑,
이에 더해 본질적으로는 금전 요구
그리고 세뇌에 가까운 이야기를 설교라고 내세우며 이를 반복하면서 세상과 교인들을 기만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악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 악이 무력해지도록 함께 손을 잡고 힘껏 일어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의 실체를 은폐하고 그 악과 대결하려는 이들을 도리어 악마로 모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곳에서 부정의한 권력은 둥지를 틀고 약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성립되는 특권은 보호받는다.
교회가 그러고 있으니 사탄은 할 일이 없게 된다.
제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교회를 나갈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마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의 존재는 겨자씨처럼 작다.
그래서 언제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다.
이들을 기필코 지켜내야 한다.
반면에 부하고 강한 교회들은 군단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
예수가 돼지 떼 속으로 몰아낸 레기온 집단이다.
레기온은 로마 군단의 명칭이다.
그것은 죽음의 부대이다.
겉으로는 생명을 외치면서 정작은 인간에게 죽음을 가하는 폭력을 그 안에 감추고 있다.
바로 이들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신학적 깃발을 들지 않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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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명은 누군가?
사실 저자 한도명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없다.
책은 그가 1933년 생으로 남도에서 태어났으며,
"한 평생 그리스도교와 그 교회를 끼고 살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이제 신학을 내려놓고 일상에서 유대신과 함께 노닐며 사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실제로 누구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냥 짐작하기로는 평생에 신학을 하면서 인간의 진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몸과 영혼을 옮겨온
<신학비평>의 편집자 송기득 선생 본인이기도 한 것 같고, 그의 분신과 다를 바 없는 그 누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두이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의 온 생애를 바쳐 몰두해온 기독교/그리스도교에 대해 "이건 아니다"라고 밝히고,
신 앞에서 솔직한 존재로 돌아가는 그의 결단과 그 모습 자체다.
한도명은 그래서 너일 수도, 나일 수도, 또는 우리 모두일 수도 있는 이름이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나는 아무래도 그리스도교를 아주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니 이미 떠났다고 해야 옳다.
교회에 나가지 않은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
분명한 것은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보다 잘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떠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는 본래의 인간 해방의 실체를 가려버린 신학적 고백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론의 핵심인 대속론을 비판적으로 짚고 나간다.
대속론은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었다는 신앙 고백의 핵심이다.
우리의 죄를 그가 대신 걸머지고 희생되었다는 의미가 담긴 신학 교리다.
대속론의 모순
이에 대해 한도명은 대속론이 유대신이 꼭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해야만 용서하시는
"피에 굶주린 잔인한 신"처럼 만들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누군가를 대리해서 처벌받도록 하는 책임회피와 주체성 상실의 결과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반박에 대해 그 나약한 존재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벌을 받게 하면 그건 도대체 뭔가라고 묻는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죄까지 대속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면,
정의는 어떻게 가능해질 것인지 반문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견해는 치열한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볼 바는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교리에 대해,
그는 정면으로 새로운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교리란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어느 특정한 역사의 시점에 정리된 생각이자 교리의 위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압박이 주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서기 318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에 의한, 신과 예수와 성령이 하나라는 3위 일체론 공포는
이단자 색출과 함께 자유로운 신학적 논쟁을 봉쇄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도명은 인간을 참 인간이 되게 하는 역사적 예수와의 만남이 보다 결정적인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각도에서 예수는 유대신의 길을 향해 나간 진정한 인간으로서,
그의 길을 뒤따르는 것이 우선이지 그저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복을 주는 존재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예수의 실체에 대한 배반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현실에 우리는 예수처럼 살기보다는 예수에게 뭘 좀 달라고 비는 쪽이 신앙의 대세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허접한 설교들
그러니 그가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앉아 있을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목사들의 설교가 싫어서다.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은혜는커녕 열을 받는다.
(…)
심지어 설교를 빌려 자신의 불만 어린 감정을 터뜨린다든지,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열을 받다 못해 화가 치민다."
그러나 그가 모든 설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다움을 말하는 설교가 있다면 그리스도교를 떠난 뒤에도 즐겨 찾아가서 경청하곤 할 것이다."
이러면서 그는 세례가 마치 성찬예식의 자격처럼 되고 있는 것도 못마땅해 한다.
그 뜻에 동참하고 함께 하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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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422144227§ion=01
목차
첫머리에
1. 나는 평생 그리스도교를 끼고 살았는데
2.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알짬
3. 허점투성이인 그리스도 대속론
4. 그 밖의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5.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탐탁하지 않아서
6. 한국교회가 싫어서
7. 글을 마치면서
출처 / 개종카페
개독교박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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