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예수들" 골라 잡아보시라!!!
본문
요세푸스의 기록에 예수는 여러명이 있었지요.
1세기의 유대 역사가인 요세프스는 적어도 19명의 예수(Yeshuas/Jesii)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 사람들입니다.
요세프스의 ‘유대 고대사(Antiquities)’에서 언급된, 헤롯대왕의 치하로부터 유태 신전의 함락까지의 기간동아 재직하던 28명의 최고 성직자중에서 적어도4명이 예수란 이름을 가졌구요.
이들을 열거하면,
필아비의 아들 예수(Jesus ben Phiabi),
쎅의 아들 예수(Jesus ben Sec),
담네우스의 아들 예수(Jesus ben Damneus)
그리고 가마리엘의 아들 예수(Jesus ben Gamaliel)...
이 밖에도 바울은 자신의 경쟁자로 ‘또 다른 예수’에 대하여 설교하고 다니는 어느 마술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고린도 후서 11장 4절).
이들의 개략적 행적을 보면,
시라크의 아들 예수(Jesus ben Sirach):
이 예수는 구약의 계시록(Apocrypha )의 일부인 ‘시라크’란 책(전도서(Ecclesiasticus)
혹은 ‘시라크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로도 알려진)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서기 전 180년 희랍에서 저술활동을 한 이 사람은 유태의 지혜서와 호머 스타일의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묶어서 편집하였다.
판디라의 아들 예수(Jesus ben Pandira):
이 예수는 마카비(Maccabean)왕조의 가장 무자비한 철권 통치자였던
알렉산더 요내우스(Alexander Jannaeus, 106-79BC)치하에서 활동한 기인(奇人)이다.
사려깊지 못하게도 이 예수는 종말론적 사업에 투신하여 예언을 일삼고 사람들을 동요시켜서 왕의 노여움을 샀다.
결국 이 예수는 유월절 저녁에 나무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함으로서 자신의 자연수명도 살지 못한채 일찍 죽었다.
학자들은 이 예수를 엣센종파의 창립자로 추측한다.(참고로 이 예수는 통일교에서 잡았지요.^^)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Jesus ben Ananias):
서기 62년을 시작으로 이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재앙이 닥칠 도시” 를 주제로
닥쳐올 재양에 대한 주문을 끝없이 되뇌이는 소동을 일으켰다.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에언을 했다:
로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채찍형을 받은 후,
이 예수는 미친 잡범 정도로 취급되어 석방되었다.
그는 예루살렘 점령당시 로마의 투석무기 ‘카타펄트’로 던져진 돌에 맞아 죽었다.
사팟트의 아들 예수:
서기 68년 갈릴리 지방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폭동당시
이 예수는 타이베리아(Tiberias)(가난한 사람들과 어부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의 우두머리-요세푸스의 ‘생애’ 12.66)의 반란군 대장이었다.
도시가 베스파시안(Vespasian)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 그는 갈릴리 바다의 연안에 있는 타리치아(Tarichea)의 북부로 도주하였다.
가말라의 아들 예수(Jesus ben Gamala) :
서기 68년, 69년 경에 당시 유대땅을 휩쓸던 내전에서 이 예수는 “평화 당”의 우두머리 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벽에 서서 성을 포위하고 있는 이두민(Idumeans, 수자(Susa)의 아들들인 제임스와 죤이 이끄는 사람들)을 질책하였다.
이런 행동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두민들이 성벽을 깨고 (성을 점령한 후) 그는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시체는 개들과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에게 던져졌다.
테부츠의 아들 예수(Jesus ben Thebuth):
서기 69년 (예루살렘)시의 북부가 마지막으로 함락되었을 때 성직자였던
이 예수는 성전의 보물을 (점령군에게) 헌납함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이 성전의 보물들 중에는 2개의 성 촛대와 순금제의 받침달린 잔, 그리고 성스러운 커텐과 최고 성직자가 입는 겉옷(장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리품들은 베스파시안(Vespasian)과 그의 아들 타이투스(Titus)의 개선식에서 눈에 띄게 전시되었다.
그렇다면,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ㅋㅋㅋ
스타다의 아들 예수(Jesus ben Stada)는 2세기 초 로마군에게 두통꺼리를 안겨준 말썽꾼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25마일 떨어진 리다(Lydda)라는 마을에서 로마군의 십자가 처형조의 손 아래에서 그의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로마군의 보복전술의 규모로 고려해 본다면 예루살렘 포위의 절정기에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매일 500명이 넘는 포로들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는 정도이다.
예수라고 불리던 유대 영웅들은 문자 그대로 땅바닥을 겹겹이 덮을 정도로 많았다.
역사적 으로 기록된 여러명의 예수중 골라 보세요..^^
댓글목록 10
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는 모습도 그렇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질럿과 님은 달리 보이지 않는군요.
애초 안티에게는 예수의 실존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교리에 등장하는 야훼의 모습이 엉망인데, 실존이 중요할까요..??
또한 교리(바이블)속의 오류에 대한 님의 잣대는 어떤것인지요...??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역사보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축 취급을 받는 탈무드를 이야기 하는 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어떨까요..??
지극히 전형적인 개독의 행태에서, 님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랍니다.
님이 가진 판단력으로, 바이블의 오류는 안보이는지요..??
잣대가 다른 판단력이라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님과 대화를 할 시간도 없고, 할 맘도 생기지 않는군요.
잠시의 대화로 만족하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참고님의 댓글
참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죄송하지만, 스타다의 아들 예수가 로마군과 전투를 벌였고 또 로마군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 이름이 등장하는 탈무드에는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리다'란 지명과 로마군의 처형을 언급하시는 걸로 봐서는 서기 118년의 키토스 전투를 말하시는 것 같은데, 그때는 예루살렘 공성전은 없었고, 리다가 반-로마 폭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주도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루카스와 그의 형제인 파보스, 율리아노스이고, 이들을 포함한 다수가 리다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아래서의 대규모 처형이야기는 2세기 초 제 2차 유대전쟁을 염두에 두신 듯 한데, 그때 지도자도 '예수'가 아니라 '시몬' 바르 코바'입니다. 또 그는 십자가형 당한게 아니고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참고하시라고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