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내 손안의 절 / 김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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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의 절 / 김기리
내 손안에는 형체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는 작고 초라한 절[寺] 하나가 있다 간혹 크고 넓은 가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두 손 합쳐 숨기는 절 그도 모자라 허리와 고개까지 숙이게 만드는 절
내 작은 절은 몇 가닥 자잘하게 그어진 손바닥금 위에 있다 사방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나는 그 절에 가장 공손한 악수를 모시고 지인들을 만나면 반갑게 마주 잡는다 예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며 매 끼니 밥을 떠먹기도 하고 맛있게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열 개의 반달이 뜨는 나의 도량 먼 곳의 저녁 타종소리를 들을 때면 귀를 모으게 하고 두 손 모아 합쳐지는 절 밤늦어 뽀드득 뽀드득 깨끗하게 손을 씻고 나면 환하게 빛이 나는 절 한 채
내 손안에는 여전히 볼 수도 없고 모양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절 하나가 지어져 있다 그 절, 마 음 저 아래쪽에서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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