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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있는 개독이 쓴 통탄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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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내가 기독교인임을 밝힌다.

여기 안티 기독교인들(그들은 자신들을 안티 개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다)이 많아서 내가 기독교인이란 것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밝히지 않으면 혹시라도 나를 안티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렇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역시 나를 오해하지 말라는 뜻에서 내가 기독교인이란 것을 밝히는 것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안티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안티 못지않게 한국 개신교회를 비판하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안티에게도, 또 기독교인들에게도 배척받고 욕을 먹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할 말은 해야 하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신학의 부재라고 본다.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의 가장 근본이 될 신학이 없다. 어떤 목사도 도대체 신학적 토대 위에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경우를 거의 볼 수가 없다(완전히 없다는 뜻은 아니다. 즉, 몇 명 정도는 있다는 말인데 불행히도 이들 목사들은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왜 신학이 없다는 소리를 내게서 듣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자.


1. 한국 개신교는 정통기독교 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통 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신학의 한 갈레이다. 이 정통신학은 신의 계시가 성서를 통해서 가장 완벽하게 전해지지만 자연을 통한 계시도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자연계시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러면서 자연계시보다 더 미신적인 성령의 역사로 통한 개인에 대한 계시는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정통 기독교 신학은 신의 무감정성을 주장한다. 즉, 절대적이고 전능한 신은 인간의 약점이고 저급한 능력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사랑의 감정을 포함한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정통신학은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하나님이 사랑 뿐만 아니라 노여움을 타기도 하고 급기야는 아부와 아첨과 물질적 뇌물까지 즐기는 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교회는 황금만능주의의 최대 생산지이자 소비자로 변해왔다.

정통신학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영향이 어거스틴에까지 다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거스틴에 의하면 악이란 선의 부재라고 한다. 즉, 선이 결여된 것이 악이지 악이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체적인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악의 존재는 물론이고 사탄의 존재까지 실체로서 인정한다. 그래서 사탄이 실제로 어떤 악한 일을 도모하고 인간을 그 악한 일에 끌여들이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참으로 어이가 기가차서 웃지도 못할 노릇이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선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에 악은 기생할 수 없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전등을 켜면, 빛이 비취면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듯이, 아무리 악이 개판을 쳐도 선이 나타나면, 수많은 작은 촛불이 거대한 세력인 수구꼴통들의 역적질을 물리쳤듯이, 작은 선들이 수 없이 나타나면 악은 저절로 물러간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기독교의 사명, 즉 작은 횟불과 촛불이 되어 악을 물리칠 사명을, 모든 악한 현상은 사탄의 역사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사탄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기독교의 세력 증대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신학은 어거스틴의 악은 선의 결핍일 뿐 별개의 존재가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다 선한 것일 뿐이라는 일원론적 신학에서 후기 아퀴나스의 선과 악은 각각 별개의 실체라고 하는 이원론적 신학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가톨릭 신학의 변천은 악의 가장 명확한 실체요 그 상징적 존재인 지옥을 과장해서 강조하게 되고 그 결과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는 면죄부의 판매라는 최악의 부조리까지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가톨릭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개신교는 그 신학이 다시 어거스틴적 일원론적 신학으로 많이 되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개신교의 신학은 선과 악에 대해서 일원로적 입장이 강하다. 악은 선의 결핍이며 기독교인들이 선을 덜 행할수록 이 세상에 악은 득세하고 선을 행하는 만큼 불빛에 어둠이 밀려나듯 악도 세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이러한 정통 개신교 신학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불신지옥을 외친다. 지옥은 이 세상에 이미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지옥에서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한 생각은 안 하고 황당한 죽음 이후의 지옥에 대해서만 온갖 묘사를 덧붙여서 협박하듯 강조한다.

어거스틴도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가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이 바로 지옥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것이 없는데, 지옥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창조물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지옥에 대해서 관할권이 없어지고 그러면 절재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는데, 그런데 그 선한 하나님이 절대적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옥을 창조했다는 것은 참으로 논리적으로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이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외에도 정통신학을 거부하는 실례를 더 들 수 있겠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싶어 정통신학과 관련된 논의는 여기서 접겠다.


2. 한국의 개신교는 근본주의 신학도 없다.

근본주의 신학이라 함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오로지(거의 오로지) 미국에서 그것도 19세기에만 성행한 한 신학의 조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미국의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하는 바람에 한국 교회는 일단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다.

19세기에도 미국 신학의 주류는 자유주의였다. 근본주의는 남부와 사회적 하층 및 비교적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던 신학이었고 주류신학은 자유주의였다.

지금 부시가 저렇게 문제투성이인 것도 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전임인 레이건과 함께 근본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어서 그렇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서의 축자적 영감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서의 한 글자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성서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최소한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한다. 예를 들어서 성서에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뺨도 대어주라고 한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얼마나 좋은가?!

진정한 근본주의 신학의 신봉자는 그래서 사회봉사와 이웃 구제와 선한일을 자기 직업인양 열심히 한다.

불의한 일을 참지 못하고 나선다. 오늘날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을 보라. 이라크의 사탄을 물리치려고 저렇게 커다란 희생도 감수하지 않는가! 물론 잘못된 판단이요 완전한 헛발질이지만 적어도 그 진정성과 성실성과 믿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 실천성만은 경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좌파나 자유주의자가 저만큼 열성과 진정성과 자기 희생정신이 있었다면 세상은 이미 엄청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정말 진정한 근본주의자의 믿음과 신앙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개신교회는 저와같은 진정한 신앙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이고 한 자도 고칠 수 없는 완벽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 속에 있는 말씀을 너무나도 쉽게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말만 근본주의자이고 실제로는 자유주의자보다 더 자유주의자이다.

신앙은 근본주의로, 그러나 삶은 자유주의자로 살자! 이것이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의 모토이다. 얼마나 편한가? 근본주의 신학을 가지고 신앙을 가지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죽어서 천국갈 것이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 것이니 마음이 편할 밖에.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끊어도 되니 세상을 위해서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은 안 해도 되니 꿩먹고 알먹기이지.

그리고 삶은 또 자유주의자로 살면 근본주의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생활과 청빈, 희생, 자기절제, 근면, 이런 것들과 담을 쌓고 살아도 되니 또 편리하지.

그래서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다. 아니 진짜 중요한 근본주의의 핵심인 청빈, 희생, 봉사, 근면, 성실 이런 것들을 내챙개쳤으니 4분의 1쪽짜리 근본주의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개신교회는 근본주의 신학도 없다.

근본주의 신학은 또 순복음교회식의 성령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크건 작건 순복음식의 오순절 교회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즉, 그나마 4분의 일쪽 남은 신학에 또 절반은 오순절 복음주의로 오염시켜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어떻게 근본주의 신학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하겠는가?!


3. 한국의 개신교회는 해방신학도 없다.

해방신학은 크게는 민중의 해방을 구원의 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신학을 지칭하며 좁게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말한다. 그래서 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등 모든 억눌린 자들의 외침을 담은 신학을 통괄한다.

한국 개신교회에 이런 신학이 있는가? 있다고 대답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한국 교회는 진정으로 업압받는 자들에 대한 함께 아파하는 모습, 함께 그 아픔을 이겨나가려는 연대의 모습, 진정으로 십자가를 지는 예수를 따르려는 이런 모습이 없다.

그들에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예수는 편안히, 공짜로 천당가는 통로를 제공하는 편리한 십자가일 뿐, 내가 그 십자가에 동참해야 한다는 참된 신앙의 모습은 없다.

예수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천당가게 하려고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십자가를 지는 정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주려고 그 십자가를 졌는데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그 십자가를 편안히 자기 개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기독교에는 권력을 장악한 전통 기독교 외에도 2천년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힘 없는 자, 고통 받는 자, 억압받는 자, 수탈 당하는 자들을 위하고 그들의 편이 되며 그들 자신들의 종교인 해방적 전통에 선 신학을 가진 기독교가 존재해 왔다. 그들은 권력의 뒤안길에서 권력자들에 의해서 불에 태워지고, 물에 수장당하고, 사지가 찢겨지면서 죽음을 맞이해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웠던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전통에 선 민중신학이 싹도 튀우기 전에 밟아 죽여버렸다. 심지어 여성신학도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전체 기독교인의 60% 이상이 여성인데 그 여성들의 입장을 전하는 신학조차 설 자리가 없는, 마초적 쇼비니스트적 교회가 바로 한국의 기독교인 것이다.


신학이 없는 기독교는 사용설명서 없는 핵무기처럼 위험하다. 운전교범 없는, 운전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처럼 무모하다.

그리고 바로 그 위험성, 무모성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한국 개신교회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가장 정신적인 문화현상인 종교가 그 정신적 대들보인 신학이 없이 어떻게 유지한단 말인가?! 일시적으로 기형적으로 외형은 성장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그 살덩어리는 암종이 되어서 자신을 파먹을 것이며 지금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한국 개신교회의 마지막 길이 참으로 한탄스럽다. 한국 개신교회가 소위 교계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양심을 가지고 급격한 교회 성장기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목회를 했다면, 그리고 사회의 정의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날 이렇게 많은 안티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국 사회 자체가 훨씬 더 좋은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아는가? 여기 안티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되어 있을지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개신교회는 그와는 정 반대의 길로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며 안티가 안티를 하건 말건 망해갈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면 한국 개신교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앉아있는 희망이 없는 늙은 교회가 되어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평화통일을 반대하고, 미국에 읍조리며, 삼일절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고, 개천절날 월드컵 경기장이나 잠실 경기장에서 미국 만세를 외칠 때마다 개신교의 수명은 급속히 단축될 것이다.

교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0-08-25 21:17:19 자유토론방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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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od님의 댓글

megod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쨋든

 모든사람들의 바람되로

개독교는 그 수명이 끝나야 합니다

통이님 건안하시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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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님의 댓글

no_profile 미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통이님
안녕하세요?

클안기에도 오세요^^
부산 모임에서 회원 강등문제도 나오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활동안하는 회원들 정리차원에서 공고하고
활동안하는 회원 강등조치를 하였는데
통이님도 공교롭게 그 기간에 활동을 안하셔서 등급조절이 있던 것입니다.

언제든지 클안기에 오세요
제가 조치를 취하도록 관리자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미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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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이님의 댓글

no_profile 통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미갓님 

미들님

두분  오해가  풀리셔서  활동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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