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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실존했다는 구라에 대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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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람답게
댓글 4건 조회 1,988회 작성일 16-05-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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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수준의 이야기를 과학이라 떠들어 대는 수준이니, 뭔 소린들 못하겠는가...허허~~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로 일생을 바친 신학자들의 의견이나 알기나 바라네..

===================================================
20세기 이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성공회 신학자인 마커스 보그(Marcus Borg), 
세계적인 로마 가톨릭 교회 신학자이자 성서학자인 존 도미니크 크로산 등의 예수 세미나 운동 시작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 기독교 연구소에서 크로산 등의 신학 문서들을 출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사는 크게 네 시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옛 연구(Old Quest), 연구 포기(No Quest), 새로운 연구(New Quest), 세 번째 연구(최근, Third Quest)이다.


제1기 옛 연구

함부르크 대학교의 극동 언어학 교수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Herman Samuel Reimarus, 1694년-1768년)는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경외하는 자를 위한 변호 혹은 보호 서신〉이라는 글에서 예수에 대한 교리가 아닌, 
임박한 종말을 가르친 예수의 삶을 보아야 한다며 ‘역사적 예수’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 방법론에서 기여하였다. 
그는 실제 예수와 복음서에 묘사된 교리 속의 예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스스로를 정치적 메시아로 여기고 유대교를 개혁하려고 했을 뿐,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1744년에서 1767년 까지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는 기적을 거부하고 성서의 저자들을 사기꾼이라고 고발하는 논문을 저술하였으나, 그의 발견을 출판하지 않았다.
라이마루스가 죽은 뒤에 고트홀트 레싱은 라이마루스의 결론을 볼펜뷔텔 유고("Wolfenbuettel fragmente")에 담아 출판하였다.


제2기 연구 포기 - 예수의 매장과 부활

라이마루스 이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에게서 교리적 그리스도를 분리하겠다.”라는 시도에 따라 숱한 예수전을 쏟아냈다. 
다비드 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예수전에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복음서 비평을 하였다. 
스트라우스는 복음서의 기적이 자연적인 사건을 오해하거나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제프 르낭(Joseph Renan)은 예수를 단지 인간적인 존재로만 묘사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수전은 계몽주의에 근거하여 
예수를 도덕적인 모범으로 이상화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이 투시되는 데 그쳤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은 시대착오적이었다. 
예수가 살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부르주아 혁명 또는 시민혁명이후에 주장된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정의사상같은 것들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삶과 사상이 급진적인 것도 그가 예언자였기 때문이지, 
사회적 정의사상이니, 인권이니 하는 현대적인 사상들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즉, 고대인 예수에게 현대적인 도덕을 찾는 것은 예수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역사적 예수를 찾는 것이 아니다.

제2세대 - 역사적 예수 연구 붕괴
수백 개나 되는 예수전을 분석한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예수전 연구의 첫 시작자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신학박사이며,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예수 연구는 방법론적 회의와 신앙적 불필요성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붕괴되었다. 
특히 루돌프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신학적으로 필요가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여, 
그의 신학이 신약성서 신학계를 지배한 시기 동안 어떠한 역사적 예수 연구서도 출판되지 않았다.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서 본문이 역사적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신학적으로 필요 없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는 신약신학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트만은 기독교 신앙이 부활절 이후에 등장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역사적 예수는 부활한 예수의 "전임자"일 뿐 기독교 신앙과 본질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보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예수의 생애 연구사》(1913년작, 원제 :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예수전들이 사실은 글쓴이가 갖고 있던 생각과 당시 시대 배경을 역사적 예수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규명했다. 
그리하여 예수전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초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생각하던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의 이미지일 뿐, 실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슈바이처에게 예수는 묵시적 종말론자, 곧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언한 인물이었다.

신학자 정승우에 의하면 슈바이처는 예수가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기대했는데 자신의 기대대로 되지 않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나라가 올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신학자 브레데는 마르코 복음서가 당시 초대 교회가 갖고 있던 믿음의 내용을 표현한 것임을 밝혔다. 
다시 말해, 예수가 고난 받는 순교자적 메시아라는 신앙이 메시아적이지 않은 예수의 삶을 메시아적으로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원래 작은 조각들로 나뉜 자료로부터 공관 복음서를 누군가가 편집하여 긴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원래 복음서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라는 단편적인 예수 전승이었으나, 복음서 저자들이 내용을 추가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로써 복음서를 연구해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있다는 희망이 붕괴되었다.

종교사 연구는 예수가 유대교인이며, 기독교는 예수 부활 사건 이후에 유대교를 모태로 시작되었다고 규명했다.

제3기 새로운 연구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인 에른스트 케제만과 보른캄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였다.
“ 다른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독일의 루터교회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년~1976년)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루돌프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과 귄터 보른캄 등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하느님(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가 된 예수는 
이미 이 땅 위에서의 삶 속에서 부활 이후의 고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고, 그 ‘발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역사적 예수>>, 

케제만은 옛 스승 불트만에 반대하여 초대 교회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들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나사렛 예수’와 교회에 의해 선포되었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소위 후기 ‘불트만 학파의 시기’로도 불리며,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선포 사이에 연속성이 강조되었다.


제4기 세 번째 연구

성공회 신학자 니콜라스 토마스 라이트(Nicolars Thomas Wright, 약칭 N.T 라이트, 톰 라이트) 주교는 
1992년 ‘새로운 연구’에서 ‘세 번째 연구’를 분리했다. 
그의 구별은 세 번째 연구가,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預言者), 즉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알린 예언자였으며, 
당시의 유대교에서의 위치를 강조한다는 데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와 ‘세 번째 연구’를 시대나 내용별로 엄격하게 분리하기가 힘들고, 제3기의 연구가 더 낡은 연구도 아니다. 따라서 이 연구의 분리는 단순한 시간상의 분리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197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세 번째 연구이다.
대부분 역사적 예수 연구가 독일 내지는 유럽 대륙에서 진행되어 왔었으나,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3기의 연구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이단으로부터 분리시켜서 그 예수에 기초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4기의 연구자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면서, 당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영지주의 자료도 역사적 예수 연구에 활용하려고 했고, 각각 그 주장이 서로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다.

이 연구가 이전 연구와 다른 것은 역사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다. 
현대에 들어서 정치, 종교적 경험, 경제 같은 분야들이 서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모든 분야를 사회적 실존의 통합된 측면들로 보게 되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보도와 역사 내러티브를 쓰는 것은 점차 해석적이며 신학적인 작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한 복음서 연구에서, 과거에는 역사적인 핵심을 찾기 위해 본문에서 나타나는 신학적인 단층들을 밝히고 제외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세 번째 연구에 이르러서는 복음서 본문의 어떤 층위에도 역사와 신학이 함께 담겨 있으며 그 둘은 분리될 수 없음을 당연히 여긴다.

신학자들의 모임인 예수 세미나의 복음서에 대한 학문적인 비평이 주목받기도 했다. 
예수 세미나는 로버트 펑크(Robert W. Funk)와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공동 회장으로 있는 캘리포니아의 웨스타 연구소(Westar Institute)와 관련된 신약학자 74명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이들의 작업은, 기독교 신앙이 교회의 케리그마가 아니라 예수의 언어와 행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신앙의 기초는 예수의 비유 및 격언, 지혜말씀, 그의 전복적 행위이며", 복음서는 기록 당시의 교회가 처한 삶의 정황을 제일 먼저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당시 기독교 초기의 신앙공동체가 처했던 정황과는 다른 역사적 예수의 말과 행동이 숨겨져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예수 세미나는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복음서의 언급들을 분석하고 평가한 후에, 역사적 예수가 "모든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거부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 지혜자이며 굳어진 관습에 도전한 사회비평가"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 세미나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학자들이 주로 참여한 데다가 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자였기 때문에 대표성과 신학적인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의 신학자들과 독일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예수의 유대적 배경과 행동 양태를 강조하는 입장의 학자들은 예수 세미나에서 말하는 전복적 지혜교사로서의 예수상(像)에 동의하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교수를 역임한 베르메스(Geza Vermes)는, 역사적 예수를 철저하게 유대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지닌 인물로, 율법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유한 갈릴래아의 랍비였다. 
예수 당시의 유대 사회에는 기적 수행자로 이름 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도 갈릴래아 지역에서 그들과 같은 기적 수행자였다고 본다.(예수가 실존했다고 해도..)

레이먼드 브라운(Raymond E. Brown)은 예수 세미나의 로버트 펑크가 말한대로 예수가 "겸손한 갈릴의 현자"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세네카 같은 "다른 고대의 선생들과 달리 어떻게 하나의 종교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제4기 연구자들은 한 유대인으로서 예수는 제2 성전 시기의 유대교 신앙과 관습의 다양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자를 가르치는 한 선생으로서 예수는, 그의 주변에 모아지고 십자가 처형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공동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갈릴래아 사람으로서 예수는 일상생활의 문화적 현실 안에서 또는 그것에 반해서 활동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당시 1세기 팔레스타인 세계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종교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면서 세 번째 연구는 “예수가 왜 십자가에 달렸는가?”라는 한 가지 가장 우선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세 번째 연구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한 것으로 결론짓지 않으면서 사회·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예수의 생애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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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주장하는 링크가 얼마나 허접한 주장인지, 알고 지껄이기 바래..

평생,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며, 의술을 펼친 슈바이처 박사의 말이니 잘 봐!~~

예수의 생애에 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보다 더 부정적인 것은 없다. 
메시아로서 공개적으로 나타나, 신의 왕국을 전하고, 하늘의 왕국을 땅 위에 세우고, 
자신의 과업을 궁극적으로 신성화하기 위해 죽어간 나사렛 예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신학자, 의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5-16 19:35:12 자유토론방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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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님의 댓글

참고 작성일

죄송하지만,  마지막에 언급하신 슈바이처의 말을  완전히 정반대로 이해하신 듯 하네요. 인용문의 앞뒤가 잘려서 그런 듯 합니다.

그의 책 (역사적 예수 연구)  결론 머릿글에서 인용된 슈바이처의 이 말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무시하고도 기독교의 성립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18-19세기 자유주의 연구자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즉,  자기 이전의 18-19세기 자유주의 연구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 메시아로서 공개적으로 나타나, 신의 왕국을 전하고, 하늘의 왕국을 땅 위에 세우고,  자신의 과업을 궁극적으로 신성화하기 위해 죽어간 나사렛 예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란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죠.

물론 슈바이처는 그런 주장들을 아주 혹독하게 비판했고, 사실 인용하신 저 내용이 바로 슈바이처가 해석한 역사적 예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 슈바이처 버전의 예수는 임박한 종말을 믿고, 스스로를 메시아로 확신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메시아입니다. 슈바이처는 예수의 역사적인 실재는 인정했던 것이죠.

슈바이처의 말 바로 앞과 뒤에 이 점이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찾아서 직접 읽어보세요. 참고하시라고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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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사람답게 작성일

좋은 지적이군요..^^

달리 말하면, "그때 그때 달라요"가 되는거지요.^^

슈바이처가 역사적 예수를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것은 아니지요.
(사실과 진실은 다른 것임을 아시겠지요.)

슈바이처의 입장은 소위 "정통"적인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즉, 슈바이처의 주장은 바이블의 내용에 있는, 역사적 예수는 없었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지금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연구자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상을 그려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슈바이처의 주장은,
"모두가 예수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에 가까운것 아닐까요..???
(그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슈바이처의 주장은 "역사적"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죠.

"질럿"이 가져온 글이나, 주장이 슈바이처 이전의 학자들의 그것처럼,
가장 이상적인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었기에 슈바이처의 말을 올려 준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예수라는 인물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랜시간을 들여 연구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일까요..??

진위를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다..???
아니면, 허위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역사적 예수"는 수시로 나타나는 유령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잊을만 하면 한번씩 등장하는...

사실, 안티들은 역사적 예수라는 인물에 관심없습니다.
역사적이지 않은 근거를 들어 역사적 예수를 주장해 온 것은 개독들이지요.
(실제로 역사에 등장하는 예수도 있습니다만, 바이블과는 전혀 상관없는 예수들이지요..)

덧붙여, 슈바이처의 연구 방법, 주장은 역사가들의 방법론과도 다릅니다.
이런 연구를 역사적 연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님 역시, 개독으로 추정되는데,
님의 주장은, "바이블과 다르긴 하지만, 예수는 실존했었다." 고 하고 싶은건가요..?
님의 글을 보면 참 교묘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면, 책 내용을 님 의도대로만 그려 내는 건가요..??)

슈바이처의 방법으로 주장한다면, 홍길동도 역사적 인물이 되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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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님의 댓글

참고 작성일

처음 말씀드린대로, 마지막에 인용하신 슈바이처의 말이 잘못된 맥락에서 잘못 인용되어있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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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님의 댓글의 댓글

사람답게 작성일

당신의 지적에 동의 할 수 없소이다.

슈바이처의 글의 맥락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으니,
문제는 제기 할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판단을 강요하지는 마시오.

그리고, 내가 슈바이처를 인용한 것은,
그가 지적한 행위를 질럿이 그대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오.

개독교가 욕을먹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그것이오.

가축 취급받으며  사는게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자의 지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으니 그리아시오.
최소한 난 사람이라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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